노틀담 수녀회…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육화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크리스타 마리 수녀    

크리스타 마리 Christa Marie 수녀                   ND 4422                PDF Download

패트리샤 조안 폭스 Patricia Joan FOX

(이전 밀드레드 앤 수녀)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2년 9월 1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서 원    1952년 8월 16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26년 8월 13일                 켄터키 커빙턴
장 례    2026년 8월 20일                켄터키 커빙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빵을 먹으면 영원히 것이다. 내가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이다.” (요한 6,51)

패트리샤 조안은 조지와 밀드레드(브레이그) 카바노의 외동딸이었다. 패트리샤는 어린 시절 큰 상실을 겪었다. 겨우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열 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어머니는 가까운 가족 친구인 조지 폭스와 재혼했는데, 그는 패트리샤에게 헌신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조지 폭스는 패트리샤를 법적으로 입양했고, 그 후 패트리샤는 자랑스럽게 폭스 가문의 성을 사용했다.

패트리샤는 1946년부터 1950년까지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녔다. 신앙의 삶에 이끌려 1950년 2월 2일 수련소에 입소했으며, 그해 말 노틀담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1952년 첫 서원을 한 후 빌라 마돈나 대학에 진학했고, 곧바로 가톨릭 교육 분야에서 사도직 활동을 시작했다. 크리스타 마리 수녀는 교직 생활을 통해 앨라배마주 버밍엄, 커빙턴의 세인트 어거스틴, 켄터키주 알렉산드리아의 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1961년, 수녀는 메이요 클리닉 물리치료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새로운 소명에 응답했다. 1963년 졸업 후, 켄터키 커빙턴에 있는 세인트 찰스 케어 센터에서 25년간 의료 사도직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수녀는 전문적인 기술과 모든 환자에 대한 너그러운 돌봄을 조화롭게 실천했다.

크리스타 마리 수녀의 평생에 걸친 성체에 대한 사랑은 1988년, 로마의 모원에서 성체조배 사도직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으면서 그 결실을 맺었다. 그곳에서 기도와 봉사를 모두 실천하며, 수녀회 내 최고령자 중 한 명이었던 마리아 힐데가라 수녀를 깊이 존경하며 성실하게 돌보았다. 성체 조배와 마리아 힐데가라 수녀를 돌보는 소임 외에도, 수녀는 매우 유능하고 높이 평가받는 물리치료사였다.

로마에서 보낸 23년은 수녀의 삶에서 가장 은총이 넘치고 소중한 시절로 남았다. 기도와 신실한 증언을 통해 수녀는 교회의 보편적 사명을 지지하는 동시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다졌다.

2011년,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켄터키 커빙턴에 있는 본원으로 돌아왔다. 지속적인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동체에 봉사했다. 크리스타 마리 수녀는 세인트 조셉 하이츠의  제의실 담당자가 되어 전례 준비를 하고 성당의 일상적인 필요를 돌보았다. 2016년 루르드 홀로 은퇴한 후에도 그곳 성당 일을 계속 도왔다. 수녀는 평생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좋으심과 사랑을 나눌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74년간의 수도 생활을 마친 크리스타 마리 수녀는 2026년 8월 13일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제 크리스타 마리 수녀가 좋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의 현존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평화와 충만함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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