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앤 Mary Ann 수녀 ND 5226 PDF Download
메리 앤 핸슨 Mary Ann HANSON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8년 3월 22일 캘리포니아, 비숍
서 원: 1958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사 망: 2026년 10월 21일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매 장: 2026년 11월 14일 캘리포니아, 시미, 성모 승천 묘지
메리 앤은 클레이튼과 아이린 핸슨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14남매 중 장녀였다. 종종 “내 동생은 수녀가 되고 나는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하느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형제자매들에게 늘 ‘제2의 어머니’ 같은 존재였으며, 형제자매들은 메리 앤을 다정하게 엄마 곰이라 불렀다. 메리 앤 수녀는 수도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별한 날을 챙기며, 식구로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수녀 또한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그들의 존재를 삶 속에서 깊이 느꼈다.
캘리포니아주 와츠에서 성장한 메리 앤 수녀는 세인트 로렌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노틀담 수녀회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후 수녀회 아스피랑이 된 메리 앤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노틀담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이 커짐에 따라, 사랑이 넘치는 대가족을 떠나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덕분에 살림과 요리에 능숙했다. 수녀는 타우젠드 옥스에 있는 관구 본원에서 24년간 주방 책임자이자 요리사로 일했으며, 인내심과 유머를 곁들여 수련자들에게 요리와 제빵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살림과 관련된 봉사에 대해 수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 원칙은 항상 ‘다른 수녀님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그들이 자신의 사도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이후 여러 지역 수녀원에서 주방 관리와 식사 준비 외에도 교사 보조, 아이들의 첫 영성체 준비, 카마릴로 호스피스 방문 봉사자로 6년 이상 봉사했다. 2003년에는 타우젠드 옥스의 노틀담 센터에 와서 주방 보조, 유치원 안내실, 수녀님들을 위한 운전 등 다양한 봉사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독서, 친구들과 영화 보기, 카드 쓰기 외에도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선물을 만들어 주곤 했다.
여행을 매우 좋아했던 수녀는 수녀회 순례 외에도 팜스프링스 여행,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 특히나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 비숍 방문을 소중히 여겼다.
생전 마지막 몇 년 동안은 기도와 현존 사도직에 전념했다. 수녀는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기도 지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곤 했다. 특히 성모 마리아와 묵주기도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가지고 기도했다. 또한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품고 세상을 떠난 수녀들의 추모 카드를 가까이에 두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작고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2025년 1월 초, 메리 앤 수녀는 낙상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되었다. 노틀담 센터에서 인근의 메리 헬스 오브 더 식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수녀는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해 주었다. 생의 마지막 주, 수녀는 임종을 앞두고 곁을 지켜준 가족, 수녀들,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수녀의 간절한 소망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다시 걷고 노틀담 센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하느님께서 “이제 오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수녀는 일어나 더욱 큰 가족 상봉을 향해 진정으로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