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캐더린 Mary Catherine 수녀 ND 4376 PDF Download
(이전 메리 로이 Mary Roy 수녀)
캐더린 도로시 로만식 Catherine Dorothy ROMANCIK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28년 6월 21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49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2년 3월 9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관리 센터
매 장: 2022년 3월 10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 묘지
캐더린 도로시는 아담과 로티(스탕크지스) 로만식의 네 자녀 중 둘 째였다. 캐더린과 그의 형제들은 부모님이 강한 신앙과 슬로바키아 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학교에 대한 캐더린의 초기의 두려움은 지식에 대한 갈증을 지니고 학구적 생활의 경이로움으로 경탄하는 학생으로 피어났다.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서 착한 의견의 어머니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클리블랜드의 성 스테파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행복한 4년간의 학교 생활 내내 캐더린은 다양한 일을 하며 학비를 충당했다.
가끔씩 수도 성소에 대한 생각을 고려해 보기도 했다. 3학년때 노틀담 수녀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인도되었는데 이 결정은 캐더린에게 평화와 흡족함을 가져다 주었다. 1946년 9월 8일에 청원자가 되었으며 착복하면서 메리 로이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메리 캐더린 수녀는 오하이오 사우스 유클리드의 노틀담 대학에서 불어와 역사학으로 학사 학위를, 오하이오 유니버시티 하이츠의 존 캐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녀는 30년 넘게 클리블랜드 교구의 중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수녀는 정력적인 교사였고 학생들과 배움에 대한 사랑을 나누었는데, 특히 풍성한 역사와 다문화적 측면에서 불어를 가르칠 때 그러했다. 재능있는 작가였던 수녀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재 시리즈인 세상의 빛을 공동 저술했다.
1987년, 정규 교실 수업에서 두번째 사도직 영역으로 옮겨왔다. 사목 사도직 봉사자 자격을 받고 오하이오 캔튼의 성 미카엘 본당에서 6년간 일했다. 1993년에는 수녀가 소중히 여기던 사도직인 병원 원목이 되었다. 수녀는 “모든 이가 본성적으로 영적”임을 알아보았고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취약하고도 성스러운 순간에 환자들과 가족들을 동반하는 일을 특권으로 여겼다. 초교파 원목 모임에서 봉사했고 그 이후 14년간 영적 보살핌 봉사자들을 조율했다.
2008년에 샤든으로 돌아간 메리 캐더린 수녀는 가이거 메디컬 센터인 대학 병원에서 사목적 배려 활동을 계속했다. 본원에서는 여러 시간을 기도 전화 사도직에 할애하며, 전화를 걸어온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기도했다. 2011년에는 교회의 성무일도를 반영하는 미국 노틀담 수녀회 기도책, 노틀담 프레이스의 주요 편집자로서의 책임을 맡았다.
은총과 친절은 수녀가 부름받았던 삶의 충실함에서 드러났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다. 자신의 신체적 도전중에도 긍정적인 자세로써 매일 만나는 모든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수녀가 우리 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안에서 기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