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한 날씨,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비와 태풍으로 인해 학교도 갈 수 없고 하는 일도 없이 좁은 방안에서만 머물러야 했던 어린이들을 위해 영화관 프로그램을 마련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사실 그날은 교구의 모든 수도자들이 모여 연례 총회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국제양성소의 모든 가족들이 바쁜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오후 회의가 마무리될 무렵 장내를 빨리 정리하고 오전부터 에어컨을 틀어놓아 시원해진 강당에 아이들을 앉히고 따갈로그어로 된 영화를 상영하였습니다.
그 전날 준비해 둔 스낵과 음료수를 나누어주면서도 강당을 가득 메운 아이들이 너무 흥분해서 조용한 극장 분위기를 어지럽힐까봐 걱정한 것과는 달리, 너무나 조용하게 집중해서 두 시간 동안 영화를 시청하는 것을 보고 수련자들은 거의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은 단 5분도 아이들을 집중 못 시키는 데, 영화가 아이들을 두 시간이나조용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영화 상영을 마친 후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이름을 가족 단위로 불러서 먼저 식료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무렵 좋으신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어 때마침 한국에서 보내준 후원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원금으로 태풍이나 자연재해 이후에 정부나 자선단체에서 쌀이나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프로그램 후 식사를 받아 가는 것 외에도 많지는 않지만 각 가족별로 나누어줄 식료품을 저희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마 저희가 판데살 프로그램을 시작한후 최고로 많은 아이들이 온 날인 것 같았습니다. 입구에서 참석한 학생 숫자를 확인해 보니 준비해 둔 식료품이 한참 모자랐습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영화를 상영하는 동안 저희는 60가족을 위해 준비한 식료품 봉투와 저희 공동체 창고에서 꺼내 온 식료품을 합해서 80가족을 위한 식료품 봉투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급하게 저희가 저녁 식사에 먹기 위해 남겨두었던 음식과 그 전날 먹은 음식까지 모두 가지고 내려와서 마지막 가족에게 다 나누어 주고 나니, 우리는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살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가진 것으로 나누고 나니, 그 누구도 모자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모두가 기쁨의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날 한 번도 제대로 앉을 시간 없이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봉사한 우리의 모든 노고를 나눔의 기쁨으로 충만히 보상받는 듯했습니다. 청소까지 모두 마치고, 우리 음식까지 그들에게 나누고 난 후 소박한 밥상을 받아 들었지만, 모두 감사롭고 기쁨에 찬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배부름과 충만함이 편안함과 물질적인 풍요에서만 오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을 통해 발견한 기쁨과 하느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를 위해 기꺼이 나눔의 손길을 내어주시는 수녀님들과 후원자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