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틸리아 마리아 Ottilia Maria 수녀 ND 4431 PDF Download
오틸리아 마리아 브리쉬 Ottilia Maria BRISCH
브라질, 카노아스, 아파레시다 성모 관구
출 생: 1930년 7월 4일 몬테네그로, RS
서 원: 1949년 2월 10일 파소 푼도, RS
사 망: 2020년 2월 21일 카노아스, 레칸토 아파레시다, RS
장 례: 2020년 2월 22일 카노아스, 수녀원 묘지, RS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마태오 19,14
주님의 마지막 부르심을 오랫동안 준비했던 오틸리아마리아 수녀는 2020년 2월 21일에 이 세상을 떠났다. 오틸리아 마리아는 7월 4일에 몬테네그로에서 태어났다. 태어난지 3일만에 세례를 받고 그 이후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부모인 죠안 밥티스타와 마리아 죠안나 바바라 브리쉬는 대가족을 이루었다. 오틸리아 마리아는 열 다섯 명의 자녀 중 일곱째였지만, 슬프게도 가족 중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떠나버린 열 두 번째 자녀였다.
1947년, 오틸리아는 파소 푼도 노틀담 수녀회의 수련자가 되었다. 수련기를 마친 다음 수도 선서를 발하고 교육에 삶을 헌신하며 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육화하기 위해 사도직을 시작했다.
71년 간의 수도 생활은 교육과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에 봉헌되었다. 마태오 복음 19장 1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34년간 꼬마들을 가르치고,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개발시키며,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큰 사랑을 키우며, 교육 사도직에 봉사했던 오틸리아 마리아 수녀의 삶을 반향한다.
교육 사도직은 수녀에게 아이들을 돌보는 광범위한 세계의 새로운 현실을 열어주었던 타쿠아라의 라르 다 크리안사 마드레 쥴리아에서 계속되었다. 이곳의 사도직은 버림받은 아이들, 집이나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 대한 모성적 지식과 기술, 사랑과 돌봄을 필요로 했다. 오틸리아 마리아 수녀는 어머니다운 사랑으로 수녀들에게 맡겨진 작은 아이들을 돌보며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곤 했다. 공동체의 다른 수녀들과 함께, 몹시 위험한 배경 출신의 아이들이 인간적, 사회적 발달을 위한 다정한 환경을 지닐 수 있도록 29년을 보냈다. 기초적 보살핌에 더하여 수녀는 이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그리스도교적 원칙과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현재, 마르 다 크리안사 마드레 쥴리아에서 살았던 많은 이들은 자기들이 받은 교육에 감사하며 사회의 영향력있는 인물이나 훌륭한 부모가 되어 있다.
오틸리아 마리아 수녀는 자신의 삶 안에 노틀담 카리스마, 즉 하느님의 좋으심과 그분 섭리에 대한 신뢰를 육화했다. 성체에 대한 사랑과 성모 신심은 수녀가 이끌던 영적 생활의 강렬한 요소였다. 수녀는 젊은 수녀들을 특별히 배려하면서 일상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낙담하지 않도록 조언을 해 주곤 했다. 공동체 생활과 기도와 모임에도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단순함, 친절, 성의, 생명에 대한 보살핌은 수녀의 특징이었다. 수녀는 강한 가족 유대를 키웠으며 친지들을 즐겨 방문하고 그들의 방문도 즐겼다.
2019년 1월, 오틸리아 마리아 수녀는 레칸토 아파레시다 공동체에 합류하여 수녀들과 직원들 사이에서 소중하고 사랑받는 현존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과 12월 경, 수녀를 소진시켰던 암의 징후로 인해 신체적 병약함이 드러났다. 자신의 병을 인식하고 있던 수녀는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온전한 맡김을 위해 스스로를 준비시켰다. 매일 매일 개인 소지품을 처리하면서 자신을 하느님께 맡겼다. 수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금방 그분과 함께 할거예요.” 마지막 몇 주는 심한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의식을 유지했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면서 받아들였다.
작별을 고합니다, 사랑하는 수녀님. 생명을 보살피고 젊은 수녀들과 지원자들을 사랑하던 수녀님의 모범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새 성소의 씨앗이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