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위나 마리 Dwina Marie 수녀 ND 4948 PDF Download
(이전 메리 앨리스 티모시 Mary Alice Timothy 수녀)
드위나 세실리아 타울러 Dwina Cecelia TOWLE
미국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신비로운 장미 관구
출 생: 1937년 7월 20일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
서 원: 1957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 로스 앤젤레스
사 망: 2018년 5월 13일 캘리포니아, 뉴베리 파크 메리 회복 기관
장 례: 2018년 5월 19일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노틀담 센터
매 장: 2018년 5월 21일 캘리포니아, 시미 계곡, 성모 승천 묘지
드위나는 마이런과 앨리스 캠벨-필킨즈 타울러의 다섯 자녀 중 셋째였다. 드위나는 아이들 중 가운데였던 자신을 특별히 복이 많다고 여겼다. 나중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일생 동안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젊은 사람들을 아는 기쁨과 행복과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족들과 아주 가까웠고 그들 삶의 일부임을 즐거워했다.”
컬버 시의 성 아우구스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LA에 있는 노틀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메리 코르델리아 수녀와 메리 죠반네 비도니 수녀와의 우정은 노틀담 수녀가 되고자 하는 갈망을 키웠다. 드위나는 1955년 2월 2일에 수녀회에 입회했다. 착복하면서 메리 앨리스 티모시 수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나중에는 세례명으로 돌아가 드위나 마리 수녀가 되었다.
1982년, 드위나 수녀는 오하이오 샤든의 전국 회의에 참석했다. 이 체험의 절정 중 하나는 자신과 같은 시기에 수녀회에 입회한 다른 수녀들을 알게 된 기회였다. 후에 수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룹에서 혼자였는데 18명이라는 ‘동기’들을 만나 기뻤다.”
수도 생활 중 수녀는 초등 교육, 보건, 공동체 봉사 등 다양한 사도직에 임했다. 수녀는 이 시기 내내 “어디를 가든 마음을 담는다면 언제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속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도직 중에서도 노틀담 본원에 있는 재봉실을 운영했던 몇 년간을 가장 좋아했다. 수녀는 문가에 “어서 오세요! 방문으로 인해 중단되는 것도 제 사도직입니다.”라는 팻말을 문가에 걸어두었다. 수녀는 수녀들의 옷장 사정을 해결해 주는 것이 그날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인 양 모든 수녀들을 맞이했다. 어떤 요청도 너무 보잘것없거나 지나치게 어렵게 여겨지지 않았다. 차분함, 인내, 사랑은 수녀가 행하는 공동체 봉사의 특징이었다.
2006년 초, 노틀담 본원에서의 기도와 현존 사도직이 수녀의 사도직이 되었다.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보건 동에 가까운 마당의 식물을 돌보며 정원 일에 대한 사랑을 계속 이어갔다. 뜨개질과 십자수, 재미있는 이야기 나눔, 직소 퍼즐도 즐겼다.
드위나 마리 수녀는 2018년 5월 초에 뉴베리 파크에 있는 메리 회복기관으로 이전했다. 수녀의 사망은 예견된 바였지만 동료 수녀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수녀는 다른 이를 섬기는데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 사람으로서 기억될 것이다. 수녀의 재봉실 안에는 작은 소년의 반바지 뒷부분을 하트 모양의 천으로 기워 덧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었다. 그림에는 “사랑으로 기워라.”라는 설명이 실려 있었다. 이것이 드위나 마리 수녀의 비밀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해 주었던 모든 일들을 드위나 마리 수녀는 사랑으로 했다.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