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쉴라 수녀 (Sister Mary Sheila) ND 3434 ⇒ PDF Download
플로렌스 앤 펠릭스 (Florence Ann FELIX)
미국, 켄터키 커빙턴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 관구
출 생 1915년 1월 15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서 원 1935년 8월 13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5년 3월 25일 켄터키 커빙턴
장 례 2015년 3월 27일 켄터키 커빙틴
매 장 2015년 3월 28일 켄터키 커빙턴 수녀원 묘지
플로렌스 펠릭스는 1915년 1월 15일에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해리는 프록터 & 갬블사에서 일했고 어머니 아나벨 킨케이드는 주부였다. 플로렌스의 세례 후 어머니도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 가족이 스페인 플루에 감염되었다. 아나벨은 병원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양측 폐렴과 스페인 플루로 사망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성 프란치스코의 빈자들의 수녀 두 명은 그녀가 가족들을 복되신 성모님께 봉헌하도록 도왔다.
플로렌스는 세 명의 남자아이와 두 명의 여자아이에서 중간이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신시내티의 성 알로이시우스 고아원에 맡겼고, 플로렌스는 그 곳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켄터키 커빙턴의 노틀담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노틀담의 아스피랑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플로렌스는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였으며 1935년 8월 13일에 서원하였다.
어릴 때 성모님께 봉헌된 메리 쉴라 수녀는 대단한 성모님 신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성소를 복되신 마리아께 맡겼다. 수녀는 매일같이 성모상 앞에서 성모님 기도를 바쳤고 자신의 수도 성소에 대해 항상 성모님께 감사 드렸다.
메리 쉴라 수녀는 영어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라틴어와 불어를 부전공했다. 긴 생애의 대부분은 교육분야에서 일하는데 보냈다. 수녀는 음악을 가르쳤고 노래하는 일을 몹시 좋아했으며 가끔은 교회 예식을 위해 오르간 연주로 봉사하기도 했다. 수녀는 전부 합해서 19년 간을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가르쳤다.
마지막 사도직 장소였던 오하이오 러블랜드의 성 골롬반 학교에서는 15년을 머물렀으며 그 시간 동안 교실에서 개인 교습을 해 주고 여러 가지 주간 작업을 하는가 하면 은퇴한 이들을 위한 프라임타이머 회에 가입하여 모임에 참석하고 그룹과 함께 짧은 여행을 다니곤 했다. 수녀는 시를 연구하고 시작(詩作)을 하기도 했는데, 수녀의 시는 수집되어 만개한 사막이라는 제목으로 된 두 권의 책으로 만들어 졌다. 본당의 성가대는 그곳 성가대 대원이었던 수녀에 대한 헌사로 수녀의 장례 미사 전례에 참여했다.
마침내 수녀는 루르드 홀의 거주자가 되어, 성당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고 많은 지향들을 위한 기도의 원천이 되었다. 자신이 언급했듯이 수녀의 기도는 “대부분이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활동”이었다. 수녀가 가장 좋아하는 여가 중 하나는 솔로로 부르든 다른 이들과 함께 하든,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다.
메리 쉴라 수녀는 2015년 1월 15일 100세 생일을 맞이했고, 올 여름 수도 서원 8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의 경축일을 고대했으나 그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쇠약해 갔다. 주님탄생예고 대축일, 수녀의 천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수녀를 하늘로 불러가셨다. 부디 메리 쉴라 수녀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있고 지상에서 만난 사랑하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는 기쁨뿐만 아니라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노래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영원토록 계속해서 수녀의 기쁨이 되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