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안토니에타 Maria Antonieta 수녀 ND 4829 PDF Download
카타리나 볼잔 Catharina BOLZAN
브라질, 카노아스, 아파레시다 성모 관구
출 생: 1932년 12월 7일 카사파바 도 술
서 원: 1953년 2월 12일 파소 푼도
사 망: 2018년 1월 5일 카노아스 레칸토 아파레시다
매 장: 2018년 1월 6일 카노아스 수녀원 묘지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 밖에 없습니다.” 시편 16, 2
마리아 안토니에타 수녀는 2018년 1월 5일 오후 4시 30분에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마감했다. 하느님의 선과 자비에 대한 신뢰는 우리로 하여금 시편저자와 함께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라고 기도 드리게 한다. 시편 16, 2
카타리나는 1932년 12월 7일에 카사파바 도 술에서 태어났다. 농업을 생계수단으로 삼던 루이즈와 아마빌레 볼잔 가정의 16자녀 중 12번째였다.
카타리나는 아직도 어린 나이이던 1951년 2월 13일 파소 푼도의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여 마리아 안토니에타 수녀라는 이름을 얻었다. 축성 생활의 초기에는 펠로타스의 상 프란치스코 데 파울라 신학교에서 사도직을 했다. 1958년, 종신선서 후에는 로마 모원으로 파견되어 성체조배 수녀로 활동하며 집안일도 거들었는데 이 사도직은 수녀에게 아주 소중했다. 수녀는 1974년 12월에 브라질로 돌아가 카노아스 본원 공동체로 들어갔다. 이듬해부터 타쿠아라의 산타 테레시냐 학교, 사그라다 파밀리아 학교, 로란테와 말리아 라이냐 학교, 쥴리오 데 카스틸료스에서 사도직을 수행했다. 1978년 본원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포르토 알레그레에 있는 카멜로 노싸 세뇨라 도 카르모에서 카르멜 회원들과의 수도승적 삶을 체험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려 1978년 6월부터 1982년 4월까지 함께 지냈다.
관구로 돌아온 수녀는 이보라의 기숙 학교와 엑스테르나토 상 죠세, 상 루렌소 도 술의 라란잘, 펠로타스, 라이냐 다 파즈 등 다양한 공동체에서 살았다. 2014년 이후부터는 건강 진료 때문에 카노아스 레칸토 아파레시다 공동체 살았고 아버지의 본향으로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마리아 안토니에타 수녀는 성모신심이 대단했다. 묵주기도는 수녀 영성의 일부였다. 수녀는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기도 생활에 부지런했다. 미사 성제를 중히 여겼고 깊은 성체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적 열정도 굉장했다. 상 루렌소 도 술과 라이냐 다 파즈 공동체에서는 쇠약한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가정방문, 가정과 병원에 있는 환자 방문을 위해 활동했고 가정 기도 그룹에 참여했다. 수녀는 이 사목적 활동에서 많은 인정을 받았다.
레칸토 아파레시다 공동체에서 지내면서 힘도 없고 더 이상 가정방문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기회가 될 때마다 눈에 띄지 않게 나가 관구 본원으로 가는 길을 찾아 맛있는 커피를 즐기곤 했다. 어떤 때는 다른 길을 산책하여 수녀들과 직원들이 걱정스레 수녀를 찾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수녀를 찾아내면 기꺼이 공동체로 돌아왔다. 수녀의 유머 감각은 수녀들과 직원들이 수녀를 몹시 좋아하게 만들었다. 질문을 받으면 흔히 우스운 답변을 주곤 했다.
마리아 안토니에타 수녀는 수녀회와 관구를 사랑했고 단순함과 선의 삶을 통해 노틀담 카리스마와 영성을 통합하려 애썼다. 수녀는 2018년 1월 13일 철경축을, 지상에서 수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좋으시고 섭리적 하느님의 영원한 품 안에서 맞을 것을 예상했다. 주님께서 수녀에게 안식과 영원한 빛을 내려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