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프라테티 수녀  

메리 프라테티 Mary Prateeti 수녀                       ND 5595                            PDF Download

메리 폴로즈 마케푸텐푸라 Mary Paulose Makeeputhenpura

파트나 성모 승천 관구

출 생           1937년 1월 27일               케랄라, 쿠라빌랑가드
서 원           1965년 1월 6일                 인도 비하르 자말푸르
사 망           2020년 12월 1일               파트나 관구 본원
매 장           2020년 12월 2일              파트나 관구 본원 묘지

메리는 바키 폴로즈 와 로사 쿠리아코제 마케푸텐푸라의 여덟 자녀 중 세 째로 태어났다. 1937년 2월 2일에 쿠라빌랑가드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944년 6월 25일, 첫 영성체를 했다.

메리는 집에서 가까운 정부 초등학교와 엘란지의 성 베드로 고등학교에 다녔다. 자서전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교리를 배우고 영적 독서를 할 기회가 많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메리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미사에 참례했다. 신앙이 자라고 수도 성소를 식별하도록 도움을 주었던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았다. 고등 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몇 년간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주일 교리 수업을 하며 본당 사제를 도왔다.

1961년 여름, 메리는 성소 증진을 위해 케랄라로 갔던 메리 프레다 수녀와 메리 카루나를 만났다. 그리고 곧 아스피랑으로 받아들여졌다. 메리는 다른 일곱명의 아스피랑들과 자말푸르로 떠났다. 1963년에 착복을 하면서 메리 프라테티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련기를 마치면서 수녀와 동료들은 자말푸르 본원 성당에서 서원을 발했다.

프라테티 수녀는 신학 공부를 위해 고아로 파견되었고 나중에는 몬테소리 교육을 위해 히데라바드로 파견되었다. 수녀는 평생 교육 사도직에 몸담았다. 몬테소리와 초등부 교실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매우 뛰어난 교사임이 드러났다. 수녀는 파트나와 자말푸르에서도 몬테소리 원장으로 봉사했다.

메리 프라테티 수녀의 전문성은 연구수업에 있었다. 우리 학교의 젊은 수녀들과 많은 교사들이 꼬마들로 가득한 교실을 배움에 대해 열정적이고 활기하게 유지하는 방식을 수녀로부터 배웠다. 수녀가 지닌 다른 전문 영역은 ‘필체’였다. 수녀가 제이 씨 출판사에서 출간한 ‘필체를 위한 쉬운 단계’는 다른 많은 학교과 양성소에서 사용되었다.

메리 프라테티 수녀는 심한 기침과 감기 증세로 2020년 11월 23일에 자말푸르에서 파트나로 이동했으며 성 가정 병원에 입원했다. 검사 도중 몇 가지 심장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계속되는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로 옮겨져 산소 공급을 받았다. 다량의 약 복용에도 불구하고 가슴의 담이 해결되지 않아 호흡기에 의지해야 했다. 나비요티의 미카엘 이냐시우스 신부가 병자 성사를 주었다. 2020년 12월 1일, 오전 9시 30분, 프라테티 수녀의 상태가 위중해졌다. 수녀가 오전 10시 35분에 고요하고 평화로이 사망하는 순간메리 테씨 수녀와 여러 명의 수녀들이함께 있어 주었다.

코로나로 인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프라테티 수녀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수녀들이자 말푸르, 뭉거, 셰이크푸라, 바르, 피로, 근처 분원에서 파트나로 모여왔다. 파트나 대교구장, 윌리엄 데 수자 신부, SJ가 다른 몇 명의 신부들과 함께 12월 2일, 10시 30분에 감사의 미사를 집전했다. 메리 프라테티 수녀의 유해는 미사 직후 관구 본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메리 프라테티 수녀는약하고 더딘 이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갖춘 채 모든 이와 모든 것에게 관심을 가졌던 투신하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