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패트리샤 수녀  

메리 패트리샤 Mary Patricia 수녀             ND 4499              PDF Download

(이전 메리 존 테레즈 Mary John Therese 수녀)

패트리샤 앤 파섹 Patricia Ann PASEK

미국, 오하이오 샤든 그리스도왕 관구

출 생:              1930년 6월 5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51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19년 6월 2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관리 센터
장 례:              2019년 6월 10일                  오하이오 샤든 관구 본원
매 장:              2019년 6월 11일                  샤든 부활 묘지

챨스와 플로렌스 (프라이봇) 파섹의 자녀였던 패트리샤와 두 명의 형제는 여가와 일과 놀이로 이루어진 성장시기 동안, 그들의 가족을 축복이자 커다란 기쁨의 원천으로써 소중히 여겼다. 신앙과 신뢰는 부모의 강한 믿음과 성모 신심에 의해 양육되었다. 흔히 반에서 가장 큰 아이였던 패트리샤는, 간호사가 될 공부를 하고자 하는 희망으로 1944년에 노틀담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학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소망은 수도 생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점점 바뀌어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할 결심을 하게되었다. 패트리샤는 1948년 9월 8일에 청원자가 되었으며 착복하면서 메리 존 테레즈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나중에는 세례명 패트리샤로 돌아간다.

메리 패트리샤 수녀는 오하이오 사우스 유클리드의 노틀담 대학에서 화학으로 과학 학사학위를, 워싱턴 DC의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수녀의 교육 사도직은 25년이상 계속되었다. 수녀는 과학, 특히 화학과 물리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전하려는 열정에 찬 뛰어난 교사였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수녀의 근엄한 현존보다 온화한 영혼과 보석같은 마음씨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금새 깨달았다.

항상 봉사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메리 패트리샤 수녀는 초기 양성기에 대한 책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 특유의 관대함으로 응답했다. 때로는 교직과 맡물려 14년간 모든 양성 단계의 피양성자들을 지도했다. 수녀는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지도할 때 타고난 상식, 인내심, 친절함을 발휘했다.

메리 패트리샤 수녀는 공동체 수녀들에 대한 봉사를 위해 파견되면서 세 번째 사도직 분야로 들어서게 되었다. 로마 총본원에서 도움을 주며 여러 해를 보냈다. 이곳 샤든에서는 건강 관리 센터에 거주하는 수녀들의 활동을 조율하는가 하면 관구 유산 전시실의 큐레이터였다. 후원회에서 일하며 기부자들과 친구들에게 친절함으로 다가갔다. 수녀의 사도직에 관해, 최근에는 공동체 사진사로 제일 잘 알려졌었다. 지난 12년간은 일상과 특별한 행사의 기쁨을 포착하느라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우리는 늘 카메라가 있으리라고 예상하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활짝 웃어요!”라는 수녀의 말을 기대했다.

수녀는 자연을 사랑했고 바깥에서 지내는 것을 즐겼으며 장인 정원사에다 재능있는 성가대 단원이었다. 암을 극복한 이로서 삶을 위한 릴레이 경주를 조직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암의 영향에 대면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지지가 되어 주었다. 메리 패트리샤 수녀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좋으심을 반향하는 깊은 기도의 여인이었다. 수녀가 우리의 사랑하는 예수님의 영원한 품 안에서 기뻐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