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죤 수녀

JoanGaynor

메리 수녀 (Sister Mary Joan)    ND 5262           ⇒PDF Download
죤 에니드 게이너 (Joan Enid Gaynor)

인도, 파트나 성모 승천 관구

출 생 :      1940년 2월 29일              자말푸르
서 원 :      1960년 8월 16일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      2014년 9월 30일               방갈로르 나라야나 흐루디알라야 병원
매 장 :       2014년 10월 2일               파트나 노틀담 본원 묘지

마음이 깨끗한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것이다.” 

위의 성경 구절은 어느 누구에게도 꾸밈이라고는 없는 마음으로 대했던 값진 보석, 메리 죤 수녀의 삶을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수녀는 이해하고 용서하고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증거하라는 성령의 촉구에 응답할 수 있을 만큼 민감했다. 수녀는 모든 이들과 쉽게 화합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어떠한 조건이나 편견 없이 자신의 자원을 관대하게 나누었다. 그랬기에 수녀는 기쁨에 찬, 어린 아이 같은 단순함과 경이와 감사의 삶을 살았다.

메리 죤 수녀는 자말푸르 철도 작업장 감독이었던 에릭 게이너 스콧랜드와 캘커타 출신 에니드 사베드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1943년 8월, 사랑하던 어머니가 하늘의 고향으로 떠나는 바람에 아버지는 2세부터 8세까지의 자녀 여섯 명을 둔 채 홀로 남겨졌다. 그 중 네 명은 기숙 학교에 들어갔고 죤과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았다. 이런 모든 어려운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매일 미사와 모든 교회 활동에 참석하며 항상 모범적인 가톨릭신자로 남아있었다.

자말푸르의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시니어 캠브리지 시험을 마친 다음 죤 게이너는 노틀담 수녀회에서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1957년, 죤은 착복을 하고, 고등교육을 위해 후에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로 파견되었다. 메리 죤 수녀는 1964년, 클리블랜드 존 캐롤 대학교에서 영어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인도의 기타 교육 기관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얻었으며 단기 신학과정을 수료하였다.

메리 죤 수녀는 키보드 위를 미끄러지는 손가락을 가지고, 수녀가 살았던 공동체마다 성당, 식당, 무대에 음악이 울려 퍼지도록 만들었으며, 축일, 생일, 경축일에 보였던 즉흥적 패러디로써 공동체를 기쁨과 경축으로 한데 묶었다. 메리 죤 수녀는 수녀의 행정 능력과, 효율과 의도를 가진 독특한 아이디어를 쏟았던 지적 능력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방갈로르, 파트나, 자말푸르에서 고학년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영어, 윤리학, 음악 교육의 탁월성은 참으로 칭찬한 만한 것이었다. 수녀는 학생들에게 진리를 말하고 개방적인 정신 안에서 확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내적 자유와 용기를 심어주었다.

창조물, 특히 동물에 대한 수녀의 특별한 사랑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었다. 연못에서 아픈 물고기를 보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가엾어라. 어떻게 아픈지 표현하지도 못하니.” 메리 죤 수녀는 단순하고 순수하고 모든 관계와 소통에서 다루고 행함에 있어 자연스러웠다.

올 여름 방갈로르의 친지를 방문하는 동안 수녀는 심장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방갈로르의 심장 전문의와의 상담 후 개심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9월 22일 방갈로르로 갔고 24일 나라야나 심장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회복은 느릴 것이라고 했다. 9월 30일 불안정한 건강 상태 때문에 의료진이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의학의 힘으로도 수녀를 회생시킬 수가 없었고, 오후 6시 15분, 수녀는 평화로이 하느님이 계신 고향으로 갔다. 메리 죤 수녀는 하느님께서 노틀담에 내려주신 소중한 선물이었다. 또한 서양 음악에 뛰어난 모범적 교육자 였으며, 노래하던 노틀담의 나이팅게일,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 우리 영성의 어머니 성녀 쥴리의 진정한 딸이었다.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