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 커빙턴, 메리 비나 수녀 방문

(좌에서 우) 버나마리 수녀(커빙턴), 메리 비나 수녀(파트나), 마니샤(파트나 NDA를 졸업하고 현재 켄터키에서 공부 중)

파트나 관구의 메리 비나 수녀가 3월 후반에 커빙턴 노틀담 수녀들을 방문했습니다. 메리 비나 수녀는 1982년에 자비에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할 때 커빙턴 관구에서 지냈습니다.

자비에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다음에는 인도로 돌아가 9년 동안 물리학 교사로 일했고 19년 동안 두 학교에서 교장직에 임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파트나 관구장으로 봉사했습니다.

35년간을 커빙턴에서 떠나 있었지만 수녀는 커빙턴에서의 짧은 체류를 귀향이라고 묘사합니다. 수녀는 성가 연습을 하거나 메리 마가렛 드뢰거 수녀와 메리 죨린 플린 수녀와 이제는 세상을 떠난 메리 르네 수녀와 매일 저녁 식사 봉사를 하던 기억을 이야기 했습니다.  1982년에는 많은 시간이 공부와 수업 참여에 할애되었지만 다른 수녀들과 매일의 삶을 즐겼고 곧바로 집처럼 느꼈습니다.

“여기 친한 친구들이 있었어요”라고 수녀는 말합니다. “우린 한 공동체로 살았어요. 30년동안 변화가 있었지만 수녀님들의 정신이 아직도 여기 있는 모습을 보고 체험하니 좋네요.”

인도에서 미국의 체험을 적용하며

인도에서 SND의 현존의 뿌리는 1949년 샤든 수녀들이 심었습니다.  1961년, 파트나 관구가 소녀들과 소외된 여성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메리 비나 수녀는 인도의 어마어마한 불평등과 파트나 지역의 도로와 전기의 부재로 인한 도전 때문에 교육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고 설명합니다. 수녀는 교육의 역할이 개인과 공동체에 힘을 실어주는 도구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메리 비나 수녀는 그 힘 실어주기의 효과를 직접 보았습니다.

“이제는 파트나 학생들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어요.”라며 수녀가 환히 웃습니다. “우리들의 사업이 사방에서 열매 맺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우리 학생들은 전 세계에 퍼져있어요, 미국에도요.”

사실 메리 비나 수녀는 3월 방문 중에 이전 파트나 노틀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켄터키 대학교에 등록한 학생과 하루 오전을 함께 보내기도 했습니다.

메리 비나 수녀는 학생들의 성공의 한 측면은 지구적 노틀담 공동체의 영향력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학생으로서 미국 교육 제도를 체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수녀가 묘사하기에 보다 응용을 바탕으로 하며 실용적 접근이었던 것들을 지켜본 일은 인도에서 수녀의 교수방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메리 비나 수녀는 이렇게 밝힙니다. “노틀담 수녀들의 탁월함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똑 같은 사명과 카리스마를 지키면서도 우리 고유의 문화와 지역 안에서 그렇게 한다는 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