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사리카 수녀  

메리 사리카 Mary Sarika 수녀                     ND 6041                                  PDF Download
로사 마튜 에즈하파람필 Rosa Mathew Ezhaparampil

인도, 카르나타카, 방갈로르 성모 방문 관구

출 생:         1945년 7월 8일                  케랄라 바라난가남
서 원:         1967년 1월 6일                  비하르 자말푸르
사 망:         2017년 11월 5일                방갈로르 성 요한 병원
장 례:         2017년 11월 7일                방갈로르 관구 본원
매 장:         2017년 11월 7일                방갈로르 성 패트릭 묘지

로사는 마타이와 마리암 에즈하파람필의 일곱 자녀 중 여섯 째였고 7월 14일에 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8세에 쓴 자서전에서는 여동생의 출생 이후에 늘 어린 동생을 보고 싶어서 학교에 가기 싫어했던 이야기를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그 여동생은 수도 생활을 시작한 두 언니의 본을 받은 엘사 수녀 SCN다.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로사는 자유롭고 배려심이 있는 아이로서 가족과 학교에서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로사는 학교에서 여러 신심 단체에 들었고 선교 단체, 소달리티, KCSL, 아직 어린 나이일 때도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영감과 자극을 주던 사회 봉사 단체의 리더가 되었다. 수녀가 되어 가장 어려운 사도직 장소인 비하르 주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섬기려는 갈망이 워낙 커서 딸을 그토록 먼 곳으로 보내기를 꺼려하던 어머니에게 로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게 성녀가 되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르잖아요!”

선교의 삶은 1963년, 로사가 18세의 나이로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고, 1967년에 서원을 하고 상징적으로 메리 사리카 수녀라는 새 이름을 택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소명에 대한 충실함은 한결 같은 순명, 그리고 북 남부 인도에서 행하던 모든 일의 중심에서 언제나 ‘가난함’을 유지하면서, 파견된 사도직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헌신에서 드러났다. 수녀는 개척자요 교육자, 경리, 분원 책임자, 학교 관리자였다….이 모든 것 안에서 메리 사리카 수녀는 놀랍도록 지속적인 용기를 드러냈는데 이는 수녀가 어려운 시기를 넘어 일어나도록 도움을 주었다. 수녀는 자신이 자리잡은 곳마다 꽃을 피우는 법을 찾아내곤 했다. 수녀는 어린아이다운 단순함과 유용성으로 가족들, 수녀들, 친구들, 자신이 섬기는 이들 – 가난한 이들과 부요한 이들 모두 – 의 마음을 샀다. 노틀담 수녀회에 있어 메리 사리카 수녀는 기도를 많이 하고, 관대하고, 용감하고, 배려할 줄 알고, 용서를 베풀며, 부지런하고, 드러나지 않고,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다. 수녀는 수녀원을 가정으로, 학교 사무실을 편안한 환대의 장소로, 마을을 한 가족으로 만들 줄 알았다! 메리 사리카 수녀는 2017년 8월 9일 불행히도 바닥에 넘어질 때까지 꽤 건강 상태가 좋았다. 놀라울 정도로 빨리 회복했지만 폐렴에서 오는 심한 열 때문에 9월 초 심장 박동이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수녀는 11월 5일까지 마지막 숨을 내 쉴 때까지 성 요한 의과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메리 사리카 수녀는 50년의 충만한 시기 동안 좋으신 하느님의 백성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충실히 섬겼다. 그리고 수천 명의 삶에 감동을 주었다! 금경축을 맞이하기 위해 설레며 기다렸지만 수녀의 신랑은 당신의 천상 나라에서 경축하기 위해 수녀를 친히 부르셨다. 수녀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