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잔 수녀

메리 로잔 Mary Rosanne 수녀                           ND 5775                            PDF Download

프란시스 앤 보 Frances Anne BOH

미국, 켄터키, 커빙턴, 티없으신 성모 성심 관구

출 생                1943년 1월 4일                      켄터키 커빙턴
서 원                1964년 8월 16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20년 5월 19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20년 5월 23일                    켄터키 커빙턴

프란시스 앤 보는 앨마와 죠지 보의 아홉 자녀 중 둘째였다. 프란시스 앤은 중간 이름인 앤으로 불렸으며 자신의 가족을 재밌고 활기차다고 묘사했다. 학교에 다니기 전에 일상의 일과 점점 커져가는 가정에서 어머니를 즐겨 도왔다.

앤은 켄터키 플로렌스의 성 바오로 초등학교에 다녔고 1961년에 노틀담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학교를 마친 다음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다. 앤의 유일한 걱정은 유대가 강한 가족들을 떠나면서 얼마나 향수병에 시달릴까 하는 점이었다. 1964년 8월 16일, 곧 선서를 발했다.

메리 로잔 수녀는 빌라 마돈나 대학(현 토마스 모어 대학교)에서 교육학 공부를 계속했다. 수 년간 수녀는 살림, 음식 봉사, 테크놀로지, 인쇄를 포함한 공동체 봉사로 사도직을 했다. 수녀는 가구를 재손질하고 어느 것이든 수선을 할 수 있는 장인이었다.

수녀가 가장 의미있다고 여겼던 사도직 영역은 장애를 지닌 성인들을 위한 개인 교습이었다. 그들에게 매일의 기본적인 일들을 가르치는 일은 수녀에게 몹시 보람된 일이었다. 수녀는 학생들에게 독립성을 제공하고 그들이 가치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수녀는 자신의 모든 사도직 하나 하나를 즐겼으며 인내와 온화함으로 사도직을 수행했다.

2016년, 메리 로잔 수녀는 루르드 홀로 은퇴해 들어왔다. 그러면서 일상적 활동에 참여하고 공동체와 특별한 외출에 함께 함으로써 계속해서 카리스마를 살아나갔다. 수녀는 각 사람에게 언제나 미소를 지어보였다. 메리 로잔 수녀(많은 이들이 이때쯤에는 로지라고 불렀던)는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손을 잡거나 이야기를 나누던가 그냥 앉아서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지켜봐 주는 일을 매우 좋아했다. 수녀는 모든 이에게 기쁨이었다!

수녀는 2020년 5월 19일에 평화로이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갔다. 사적 기도 예식이 2020년 5월 23일, 토요일에 본원에서 있었고 그 후 수녀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메리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한 로잔 수녀의 생애에 대한 경축은 이후에 열릴 예정이다.

메리 로잔 수녀는 언제까지나 그 부드럽고 사랑에 찬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영원토록 하느님 사랑의 품 안에서 기쁨과 평화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