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앤 수녀

메리 앤 MARY ANN 수녀                     ND 4141                     PDF Download

이전 메리 티모시 Mary Timothee 수녀

메리 앤 제미냐니 Mary Ann GEMIGNANI

파트나, 성모 승천 관구

출 생: 1927년 12월 6일 테네시, 멤피스
서 원: 1947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1년 2월 8일 파트나 관구 본원
매 장: 2021년 2월 9일 파트나 노틀담 수녀원 묘지

메리 앤 수녀는 피터 제미냐니 와 알베라(벨로미니) 제미냐니의 두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남동생 루이스는 두 살 아래였다. 테네시 멤피스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클리블랜드의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메리 앤은 1945년 2월 2일, 클리블랜드에서 청원자가 되었다. 착복하면서 메리 티모시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나중에 자신의 본명인 메리 앤으로 변경했다. 수녀는 1947년 8월 16일에 서원했다. 클리블랜드 성 요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유기서원기에 클리블랜드의 성 프란시스 학교와 가르멜 산 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1952년 8월 종신서원 후에는 비하르 자말푸르 선교를 받아들였다. 

메리 앤 수녀는 자말푸르 노틀담 아카데미 교사로서 인도에서의 사도직을 시작했다. 수녀는 자말푸르 성 요셉 초등학교, 사사람의 성 안나 초등학교, 파트나 하트만 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사했다. 유창한 힌디어와 교리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다양한 사목 사도직에 임할 수 있었다. 수녀는 1년간 마닐라 동아시아 사목원에서, 그 후 텍사스의 성 토마스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종교 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도로 돌아온 수녀는 6년간 여성 수도자를 위한 사도적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의 공동 담당자를 역임한 다음 모카마와 달통가니의 교구 교리 교육원에서 보조했다. 메리 앤 수녀는 자말푸르 노틀담 수녀원의 분원 책임자였고 나중에는 파트나 본원 책임자가 되었다. 노틀담 통신 센터에서 관여하여 죠시타 수녀와 만쥬스리 수녀와 함께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미디어 워크숍을 조직했다. 

수녀의 거동이 불편했던 지난 10년 동안에도 수녀는 보행기를 가지고 이동하곤 했으며 모든 공동체 모임에 참여했다. 수녀가 거의 빠지는 법이 없었던 한 가지는 저녁 식사 후의 “러미 카드 놀이”와 “복지 방”에서의 에어로빅 운동 세션이었다. 수녀는 겨우 삼 사일 동안만  온전히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며 방에 머물러 있었다. 주일 오전 11시에 물을 청한 다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오전 4시가 되었을 때, 평소처럼 기상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수녀가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다는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장례 미사는 관구 본원 성당에서 파트나 대교구장인 세바스찬 칼루푸라 신부와 다른 25명의 사제들이 집전했다. 여러 명의 우리 수녀들도 전염병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원에서 모여왔다. 영결식은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던 메리 앤 수녀에게 적합한 헌사였다. 수녀들이 메리 앤 수녀에 대해 가장 감동적으로 여기는 점은 수녀의 소박한 생활 양식, 청빈 정신, 기쁨에 찬 단순함이었다. 메리 앤 수녀가 노틀담 수녀들과 모든 인도인들을 위해 전구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