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지브라일 수녀

마리아 지브라일 Maria Djibrail 수녀            ND 4820              PDF Download

스리 바수키 Sri Basuki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착한 의견의 어머니 관구

출 생:              1927년 12월 22일      인도네시아, 솔로
서 원:              1958년 7월 10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사 망:              2018년 12월 29일      페칼롱간
장 례:              2018년 12월 30일      페칼롱간 수녀원 묘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스리 마수키는 사지드 이슬람 앗모수부로토와 수파르미의 세 번째 아이였다. 전부 아들 둘과 딸 셋이었다. 스리와 스리의 형제 자매들은 부친이 군인으로 파견되었던 동 인도네시아 솔로르 섬의 비신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 스리는 1950년 4월 8일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되고 같은해 5월 7일에 욕자카르타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스리는 간호사이자 산파로 교육받은 후 시험에 합격하여,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노틀담 수녀회 소속이던 페칼롱간 지역 병원에 배정되었다. 스리 바수키는 그곳에서 일하던 우리 선교사 수녀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으로 선교지 책임수녀에게 청하여 1955년 8월에 노틀담 청원자로 받아들여졌다. 수도 양성은 스리로 하여금 예수님께 피앗으로 응답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1956년 7월 14일 수도복을 받으며 마리아 지브라일 수녀가 되었다.

수녀는 우리 선교사 수녀들에 의해 순명, 자기 규율을 갖춘 사람이자 수도 서원을 살아감에 있어 단순하고 굳건한 이가 되도록 양성되고 교육받았다. 서원이후에는 로마 총본원이자 모원에서 종신선서 준비반으로 지내다 1964년 7월 2일에 그곳에서 종신선서를 발할 때까지 간호사와 산파로 파견되었다.

인도네시아로 돌아와서도 보건 분야의 사도직을 계속했다. 수녀는 페칼롱간의 부디 라하유와, 렘방의 성녀 데레사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일했다. 수녀의 인내심과 다정함과 기도 덕분에 젊은 엄마들은 수녀에게 와서 아이를 분만했다. 마리아 지브라일 수녀의 손에서 안정감을 느꼈던 것이다. 수녀는 의사, 동료 산파, 간호조무사, 기타 직원들과도 잘 지냈다.

점차 쇠약해지면서 수녀는 2006년에 페칼롱간 살루스로 이전했고 그곳에서 여전히 소소한 여러가지 일들을 하면서 수녀회와 우리 공동체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바쳤다. 우리는 수녀에게 몹시 즐겨 기도를 부탁하곤 했다. 수녀는 이에 기꺼이 응했다. 안타깝게도 2016년, 뇌졸증으로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침대에 머물게 되었다.

수녀의 상태는 12월 25일 크게 악화되어 부디 라하유 병원으로 실려갔고 그곳의 응급실에 입원했다. 12월 29일 오전 3시 45분, 생명의 주님께서는 수녀들에게 둘러싸인 수녀를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도록 부르셨다. 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지브라일 수녀를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부디 수녀가 천상 아버지의 품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기를. 마리아 지브라일 수녀님, 작별을 고합니다. 수녀님께서 생전에 그리하셨듯이 저희도 하느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