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렛 MARY LAURETTE 수녀 ND 4541 PDF Download
패트리샤 알비나 크래머 Patricia Albina KRAMER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0년 12월 16일 오하이오 가필드 하이츠
서 원: 1954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0년 10월 14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0년 10월 26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 묘지
“나의 하느님, 나의 모든 것…”
패트리샤는 네드와 로라(슈미트) 크래머의 세 자녀 중 막내였다. 클리블랜드 근처의 소도시 가필드 하이츠에서 성장했고 아이들은 성 베드로와 바오로 초등학교에 다녔다. 패트리샤의 가족은 여가, 일, 놀이로 이루어진 어린 시절의 축복이요 큰 기쁨의 원천이었다. 8학년을 마친 패트리샤는 클리블랜드의 노틀담 아카데미를 선택했다. 노틀담 수녀들을 만나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당신에 대한 봉사로 부르고 계심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 이곳에서였다. 1948년 졸업 후에는 2년간 치과 보조원으로 일한 다음 클리블랜드 성 요한 대학에서 초등 교육 수업을 시작했다. 수도 성소에 확신을 느낀 패트리샤는 1952년 2월 2일에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으며 착복하면서 메리 로렛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녀는 성 요한 대학에서 토요일과 여름에 강좌를 들으며 학교의 중급반에서 가르쳤다. 수녀는 1959년에 교육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강한 갈망은 수녀를 노틀담 인도 선교지에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1960년 12월 16일에 인도 자말푸르에 도착했는데, 바로 수녀의 30번째 생일이었다! 메리 로렛수녀는 삶과 사도직 연계와 재능을 나누려는 넘치는 열정과 열의를 발산했다. 그리고 미국 문화와 자신의 교육적 전문성과 노틀담 유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다. 인도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수녀는 사람들과 그들의 깊은 영성과 풍부한 전통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도인들과 그 문화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 그 안에 잠기며 그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수녀는 “개인적, 영적, 감정적 성장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내 안에 존재하는 줄을 전혀 몰랐던 깊이와 넓이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메리 로렛 수녀는 1977년과 1978년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클리블랜드 주립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학업을 마쳤다.
수녀는 파트나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담임 교사와 행정가로 일했다. 상담사, 교사 교육 담당, 수녀 교육 코디네이터였으며 세미나와 단기 강좌를 진행했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수녀들과 동료들의 멘토와 친구가 되어주었다. 판트나카에 위치한 유명한 농업 대학교 캠퍼스 스쿨의 공동 창설자로서 학교가 이룰 미래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마련했다. 메리 로렛 수녀는 민감함과 연민의 마음으로 인도에서 30년간 사도직을 행했다. 수녀는 학생, 협력자, 수녀들에게 권위를 부여 하면서, 그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도전하기도 했다.
1991년에 미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우선 버지니아에서, 후에 오하이오 아크론의 세 군데 도심 본당에서 교육부장으로서 복음화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을 계속했다. 수녀는 성인들의 개인 지도를 했고 샤든 노인 센터에서 자원 봉사를 했으며 본원 공동체 수녀들을 위해 봉사했다. 머무는 곳마다 헌신과 정직과 활력과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다. 지난 몇 년간, 느리지만 지속적인 신체적 쇠퇴를 경험하면서도 기쁨에 찬 유머와 다른 이들에게 현존함은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수녀가 하느님 안에서 삶의 충만함을 경축하는 동안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