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메리 Katherine Mary수녀 ND 4956 PDF Download
(이전 메리 데이빗 앤 Mary David Anne 수녀)
캐서린 메리 스크라벡 Katherine Mary SKRABEC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6년 4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57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0년 8월 3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0년 8월 7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 묘지
“받아주소서, 주님…제게 당신의 사랑과 은총만을 내려주소서…”
케이티는 앤토니와 메리 (퍼스트) 스크라벡의 세 딸 중 막내였다. 클리블랜드에 살면서 성 비투스 성당과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들의 슬로베니아 유산이 양육되고 경축되었다. 케이티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겨우 여섯 살이었으며 6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사망했다. 슬픔이 몹시 컸으나 케이티는 언니들과 대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많은 웃음과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가진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클리블랜드의 노틀담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54년 9월 8일에 청원자로서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착복을 하면서 메리 데이빗 앤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녀는 클리블랜드의 성 요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고급 교리 과정자격과 버지니아 미들버그의 노틀담 인스티튜트에서 종교 교육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수녀는 41년간 오하이오, 버지니아, 플로리다의 초등학교에서 전 학년을 가르치며 사도직을 행했다. 수녀는 굳건한 전문가 교사였지만 학생들을 편안하고 중요하고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수녀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면서도 수업 준비에 매우 창의적이었다. 유머 감각과 기지와 삶에 대한 사랑은 수녀를 기쁨에 넘치면서도 동료와 학생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환대의 현존으로 만들어 주었다.
2006년에 본원으로 이전해 온 다음에는 자신을 필요로하는 공동체면 어디든 도움을 내어주었다. 수녀는 시설과에서 보조하면서 수녀들을 약속장소나 가족 행사에 데려다 주었다. 수녀의 외향적 성격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환대 코디네이터로서 방문객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그들이 환영받고 편안히 느끼게 만드는데 나누었던 재능이었다. 문서실에서 일했던 15년간은 샤든 관구에서 사망한 모든 수녀들을 담은 추모 앨범을 만드는데 수녀의 예술적 재능과 책을 묶는 기술을 사용했다. 이 앨범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질 대단한 공헌이었다. 앨범은 현재 관구 유산관에 전시되어 있다.
예수님에 대한 수녀의 사랑은 단순하고 친밀하고 강력했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줄곧 기쁨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수녀를 통해 빛났다. “케이티”(라는 애정어린 이름으로 알려져 있듯이)는 수녀 안에 그 사랑을 알아보았던 소중하고 충실한 친구들과 가족들을 가졌던 축복을 누렸다. 이제는 강한 신체와 명료한 정신과 기쁨에 찬 마음으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품에서 쉬기를 빈다. 평화로이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