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죤마리 Mary Johnmarie 수녀 ND 4396 PDF Download
죠앤 메리 하간 Joan Mary HAGAN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29년 7월 23일 워싱턴 D.C.
서 원: 1950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0년 7월 19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관리 센터
매 장: 2020년 7월 23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묘지
죠앤은 죤과 마가렛(에카르트) 하간 사이에서 태어난 세 명의 자녀 중 둘째였다. 수도인 워싱턴에서 성장했는데 여행 안내인이었던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죠앤은 아버지가 방문객들을 이끌고 국립 기념관이나 흥미로운 정보들을 구경하고 감상할 때 자주 동행하곤 했다. 죠앤은 노틀담 수녀들이 사도직을 하던 가톨릭 대학교 교정 학교에 다녔다. 자신을 수도생활로 이끌어 들인것은 수녀들의 탁월한 수업과 더불어 그들의 다정함이었다. 졸업 후 노틀담 아카데미의 학생이자 아스피랑이 되기 위해 커다란 용기와 결단력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 클리블랜드로 왔다. 졸업반 2월에 청원자가 되었고 착복하면서 메리 죤마리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녀는 클리블랜드의 성 요한 대학에서 교육학으로 학사학위를, 오하이오 신시내티 자비에 대학교에서 행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수녀는 거의 50년간 오하이오와 버지니아의 초등학교에서 교장과 교사로서 사도직을 행했다. 수녀는 수업 준비에 철저하며 존경받는 교사였다. 가르치는 모든 수업과 삶에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인 음악과 노래에 대한 사랑을 나누었다. 매학년에서 가르치는 일이건 합창단을 이끄는 일이건 합창단 단원으로 참여하건, 성당에서 올갠을 연주하건, 음악은 언제나 수녀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수녀의 열정과 에너지와 외향적 자세는 동료들과 학생들의 인정을 받았다.
버지니아의 다양한 학교에서 22년간의 사도직에 임하는 동안 메리 죤마리 수녀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의 어느 지점에서 방문객들을 내려주어야 하는지를 알았기에 그들을 워싱턴으로 즐겨 데려갔다. 수녀는 일반 관광객들이 간과하는 이야기나 관심지역정보들을 나누어 주었다!
1998년, 수녀는 샤든으로 이전해왔다. 그 이후 15년간은 수녀들을 약속장소에 데려다 주거나 그들이 친구들과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게 자신의 재능을 사용했다. 낯선 도로와 목적지를 찾아 운전하는 일은 문제가 없었지만 도전이기는 했다! 쾌활한 웃음을 터뜨렸고 어떤 때는 의지가 강했지만 항상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썼다.
메리 죤마리 수녀는 성당에서 음악 사도직이나 수녀들 사이에서 기쁨을 퍼뜨리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서 오는 전화나 편지를 예상해서, 자신이 그들을 생각하고 있노라고 알리기 위해 많은 카드나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수녀의 수도 서원 70주년인 은총 경축은 겨우 몇 주 전이었다 이 사랑의 충실성에 대한 경축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자신의 삶에 멜로디를 붙여넣었던 메리 죤마리 수녀가 이제는 좋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안에서 기뻐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