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니제 마리아 Evanise Maria 수녀 ND 5882 PDF Download
에바니제 주카티 Evanise Zucatti
코스펠드, 여왕이신 마리아 관구(로마)
출 생: 1945년 11월 18일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서 원: 1966년 2월 11일 브라질, 카노아스
사 망: 2019년 9월 20일 이태리, 로마 제멜리 병원
장 례: 2019년 9월 23일 이태리, 로마 포레스테리아 사그레 쿠오레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2 티모 4,7)
티모테오에게 보내는 바오로의 두 번째 서간문 속의 구절은 에바니제 마리아 수녀가 삶에서 체험한 어려움과 보살핌을 표현해 준다. 에바니제는 쥴리오 주카티와 죠아나 무라로 주카티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자녀의 맏이였다. 가족 부양을 위해 부모가 밭에서 일하는 동안 에바니제와 여동생과 남동생은 밭과 숲과 강둑에서 놀았다.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일과 딸기류를 먹고 여러 번 중독되었다. 수 년이 지난 다음 여동생과 남동생이 또 태어났다. 에바니제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부모와 조부모뿐만 아니라 숙모와 숙보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다.
어렸을 때 이미 수도 생활에 대한 소망이 분명해 졌다. 가족 내에서의 신앙 교육과 노틀담 수녀들이었던 숙모들의 모범 덕분이었다. 양친에게는 딸을 보내는 것이 희생이었지만 그 결심을 받아들였다.
에바니제가 아스피랑으로 카노아스에 왔을 때는 아직도 어렸고, 1964년에 노틀담 수녀회의 수련기를 시작했다. 1972년, 에바니제는 간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자신의 사명에 완전히 투신했다. 수녀는 병원에서 일했으며 간호 학교의 기술적 영역에서 교사이자 감독관이었다. 에바니제 수녀는 병자들에 대한 넓은 마음을 가지고 보다 나은 건강 간호를 위해, 특히 빈자 중의 빈자들과 필요한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수녀는 42세가 되었을 때 수도 생활을 심화하고자 자신에게 매우 중요했던 사도직으로서 마을의 갓난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도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수녀는 이태리 관구 노인들과 병자 수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제시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1988년 2월, 새로운 봉사를 위해 브라질을 떠났다. 수녀는 마음을 다해 이태리 공동체에 통합했으며 노인들과 병자 수녀들을 돌보았다. 로마에서의 모든 노력 중에도 아기들에 대한 사랑을 절대 잊지 않았다. 우리 가족 중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곧바로 옷을 뜨개질했는데 이는 큰 기쁨을 주곤 했다.
2017년, 수녀는 심한 두통을 일으키는 삼차신경통때문에 수술을 받았다. 이 때 항생제에 저항하는 병원균에 감염되었는데 이를 없앨 수가 없었다. 수녀 삶의 마지막 2년은 많은 고통과 입원으로 점철되었다. 이제 수녀는 그 자신이 병원 환자들과 동료 수녀들의 삶과 건강을 위한 간호를 경험하게 되었다.
수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언제나 생명을 높이 샀다. 삶을 사랑했으며 죽음을 다루고 싶어한 적이 없다. 항상 수녀들이 존엄과 평화안에서 고통없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1989년 8월)
에바니제 마리아 수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온전했다. 9월 20일, 지상에서의 사명을 마치고 천상 아버지의 본향으로 평화로이 돌아갔다. 이제 수녀가 치른 훌륭한 싸움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생명의 관을 받게되기를 빈다.
우리는 25명의 사제 (OMI신부들과 기타)와 많은 노틀담 수녀들, 다른 수녀회 수녀들, 친구들과 지인들이 자리한 가운데 에바니제 마리아 수녀의 장례를 치렀다. 학생신부 몇이 전례를 위해 노래와 음악으로 기여해 주었다.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이제는 에바니제 수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평화를 누리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