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마리 Lea Marie 수녀 ND 4661 PDF Download
에스더 루이즈 크노켈만
Esther Louise Knochelmann
켄터키, 커빙턴 티없으신 성모성심 관구
출 생: 1934년 7월 11일 켄터키 커빙턴
서 원: 1954년 8월 25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6년 11월 22일 켄터키 커빙턴
장 례: 2016년 11월 28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6년 12월 1일 커빙턴 수녀원 묘지
에스더는 다섯 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을 키웠던 칼과 마리 노켈만의 딸이었는데 여섯째였다. 성 요한 학교와 커빙턴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닐 때 노틀담 수녀들에게서 영감을 받곤 했다. 에스더는 17세였을 때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고 1954년 8월 25일에 서원을 발했다.
레아 마리 수녀는 여러 초등학교와 고아원에서 3학년에서 5학년까지 가르치며 켄터키 커빙턴에서 사도직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성 프란치스코 센트럴 간호조무 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60년에 학위를 수여한 후 수녀는 정식 간호사로서 성 찰스 케어센터와 성 클레어 지역 메디컬 센터에서 일했다. 1969년 6월, 레아 마리 수녀는 환자들에게 더욱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작업요법 보조 자격증을 취득했다. 수녀는 특히 성 요셉 하이츠에서 2009년 은퇴 전까지 발전문가로서 보조하는 일을 즐겼다. 레아 마리 수녀는 건강관리 사도직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주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말을 했다. 수녀는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 사랑을 나누어주었다. 공동체 수녀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거나, 안내실을 보고, 원목실을 청소하며 도왔다. 수녀는 켄터키 커빙턴의 성 아녜스 성당의 예비자 교리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신자가 되려고 배우는 이들과 긴밀히 연결하여 일면서 각 예비자들을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수녀의 가족은 그에게 언제나 중요했으며 대가족 모임에 대해 즐거워하곤 했다. 수녀의 형제 자매들은 가까운 유대를 맺고 있었다. 조카들은 수녀가 좀 더 젊었을 때는 예외 없이 맨 처음에 뛰어들어 아이들과 운동 경기를 했다고 회상했다. 수녀는 많은 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공동체 회원들, 가족과 친구들은 레아 마리 수녀의 삶을 경축하기 위해 11월 28일 월요일에 모였다. 그리스도교 매장을 위한 미사가 성 요셉 하이츠 수녀원 성당에서 열렸다. 집전자는 가족의 친지였던 다니엘 보겔폴 신부였다. 수녀의 좋은 친구였던 로버트 로징 신부가 강론을 했는데, 강론 중에 수녀가 그리스도의 권능이요 현존의 증거자였음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바로 레아 마리 수녀가 일생 동안 했듯이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이들에게 그러한 현존을 닮도록 도전 받는다.
레아 마리 수녀가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품 안에서 기쁨과 평화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