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레나 수녀 (Sister Mary Reina) ND 3881 PDF Download
메리 에텔 알링하우스 (Mary Ethel Arlinghaus)
미국, 켄터키 커빙턴 티없으신 성모 성심
출 생: 1917년 6월 26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서 원: 1943년 8월 12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6년 5월 22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6년 5월 26일 켄터키 커빙턴
메리 레나 알링하우스 수녀는 겸손한 멘토였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미술 교사였다. 메리 에텔은 사랑에 넘치며 부지런한 중산층 집안에서 성장했다. 메리 에텔은 죠셉과 엘라 알링하우스의 네 자녀 중 맏이였다. 오하이오 본드 힐의 성 아녜스 학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노틀담 수녀들의 교육을 받았고 영감을 얻었다. 메리 에텔은 23세에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여 2043년 8월 12일에 서원했다.
메리 레나 수녀는 1942년에 켄터키 파크 힐 성 아녜스 학교에서 3, 4학년을 가르치며 사도직을 시작했다. 사도직을 계속하면서 1952년에 빌라 마돈나 대학에서 미술과 생물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1958년에는 노틀담 대학교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수녀는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수채화와 서체에 대한 재능과 힘을 끊임없이 연마했다. 이 두 가지 분야는 수녀가 서체의 선을 이용하며 그림을 그릴 때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수녀가 가르쳤던 기술이었는데 학생들이 이를 터득하면 그들의 작품이 훨씬 더 강렬해지곤 했다. 수녀의 기나긴 삶의 대부분은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바쳐졌다. 참으로 재능있는 방식으로 가르쳤기에 많은 학생들이 수녀를 지극히 사랑했다. 수녀의 학생들은 수녀의 친구가 되었다. 그 중 많은 수를 이끌어 1교시 종이 치기 전에 학교 성당에서 매일 아침 묵주기도 한 단씩을 바쳤다. 점심시간을 수녀와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수녀의 점심 시간에는 수녀에게 꽤나 헌신하고 자신들의 삶에서 수녀의 중요성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졸업생들이 나타나곤 했다.
“은퇴/타이어 갈이(re-tire)” 후, 즉 자신의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 타이어를 교체한 후에는 노틀담 도심 교육 센터의 어린이들, 소그룹의 수녀들, 친구들 그룹 등 여러 다양한 그룹에게 비정규적 수업을 해 주었다. 오락 시간에 카드 놀이를 하고 나면 이 그룹 중 한 두 그룹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을 연습하거나 종이 조각 만드는 등의 일을 하곤 했다. 몇 년 동안 수녀는 수녀들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낼 수 십 개의 축하 카드를 만들었다. 이 작은 보물을 받은 이들이 카드를 가지고 나와서 몹시 좋아하며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메리 레나 수녀는 가르치는 일에 실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수녀의 부고가 거의 십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음을 볼 때 수녀가 지닌 영향력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척이나 널리 퍼진 이러한 영향력은 수녀의 장례 미사가 수녀원 성당이 아니라 본당에서 치러진 이유였다.
메리 레나 수녀는 올 6월에 99세 생일을 축하할 차례였다. 우리는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수녀가 우리 가운데 있었음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는 수녀의 양육적인 교육 방식과 잊을 수 없는 미소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