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크레센시아 수녀(Sister Maria Kresensia) ND 6220 PDF Download
마리아 실비아 이라와티/리엠 록 티에(Maria Silvia Irawati / Liem Lok Tjie)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착한 의견의 어머니 관구
출 생 : 1940년 10월 29일 인도네시아 페말랑
서 원 : 1969년 7월 8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사 망 : 2015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장 례 : 2015년 12월 27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마리아 크레센시아 수녀는 1940년 10월 29일에 리엠 홍 캥과 리아우 르위 니오 사이의 여섯 째로 태어나 마리아 실비아 이라와티 리엠 록 티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흔히 이라와티라 불렸다. 이들의 자녀들은 남자아이 네 명과 여자아이 네 명이었다. 페말랑은 이라와티가 성장한 마을이다. 이라와티는 유교 집안에서 교육받고 자라났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라와티의사랑은 1965년 12월 19일에 성 베드로 페칼롱간 페말랑 본당에서 세례 성사를 통해 가톨릭이 되고 1966년 12월 8일에는 페칼롱간에서 견진 성사를 받도록 이끌었다.
중학교 이후의 유년기는 다양한 삶의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기술이란 자동차 기계공학, 미용, 타이핑, 재봉 과정 등이었다. 취미는 농구, 수영, 영화감상이었다.
한 수녀의 삶에 관한 영화를 본 뒤, 이라와티는 그들과 같이 되고 싶어서 노틀담 수녀회를 소개 받았다. 마침내 1966년 5월 16일에 청원자로써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 다음 1967년 1월 4일 페칼롱간에서 착복을 하고 마리아 크레센시아 수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969년 7월 8일의 첫 서원 이후에는 재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재봉실로 파견되었다. 수녀는 수도자로서의 영적 인간적 삶을 성장시키며 1974년 6월 11일에 노틀담 수녀로서 종신 서원을 발했다.
재봉사로서의 마리아 크레센시아 수녀의 재능은 뛰어났다. 수녀는 재봉 외에도 다양한 집안 사도직을 맡았다. 게다가 로마 모원에서 성체조배 사도직에 임하기도 했다. 수녀의 지도자 정신은 관구의 본원장이었을 때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헌신하는데 발휘되었다.
수녀는 2014년에 은퇴하여 페칼롱간의 노인의 집 위스마 하나에서 지냈는데 뼈가 약화되어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마리아 신심은 고통의 시기에 수녀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크레센시아 수녀의 조용한 영혼은 병고와 고령 중에 신선함과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2015년 6월부터 건강이 쇠퇴하면서 수녀는 자신의 고통을 성모님의 고통에 일치시켰다. 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오후 3시에 마침내 그 고통이 끝났다. 마리아 크레센시아 수녀는 우리 수녀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떠났다.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