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도나메이 수녀 (Sister Mary Donnamay) ND 4365 PDF Download
버지니아 테레즈 와이글러 (Virginia Therese Weigler)
타우젠드 옥스, 신비로운 장미 관구
출 생 : 1928년 11월 24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 1948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 2015년 10월 24일 캘리포니아 뉴베리 파크, 병자들의 성모님 휴양소
메리 도나메이 와이글러 수녀는 1928년 11월 24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서 니콜라스와 프란시스 브루닝 와이글러의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났다. 버지니아가 11개월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예기치 않게 세상을 뜨면서 버지니아는 아버지와 함께 그의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결국 아버지가 재혼하기는 했지만 후에 수녀가 된 버지니아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를 키우며 내 어린 시절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할머니였다.”
버지니아는 클리블랜드의 세인트 스티븐 학교 학생으로서 노틀담 수녀회를 알게 되었다. 8학년 교사였던 메리 브랜든 수녀의 격려를 받아 버지니아는 1942년 9월, 안셀 로드에 있는 노틀담 아카데미에 아스피랑으로 입학하였다. 버지니아는 늘 준비기간이었던 이 때를 생애 최고의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형제 자매가 없었기 때문에 아스피랑 시기에 내 나이의 다른 여자 아이들과 계속해서 같이 있는 게 즐거웠다.” 버지니아는 1946년 2월 2일에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였으며 2년 후인 1948년 8월 16일에 서원하였다.
메리 도나메이 수녀는 많은 재능을 가진 여인이었다. 교회에서 주로 초등학교 교사나 교장으로서 사도직을 했는데, 우선 오하이오에서, 그 다음에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있다가 1953년에 남부 캘리포니아로 파견되었다. 게다가 수녀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였으며 수녀회 성가대의 중요한 구성원이기도 했다.
1993년, 메리 도나메이 수녀는 노틀담 센터로 옮겨와 10년간 분원 경리로 봉사했고 나중에 취학 전 학습 센터에서 안내실 봉사를 했다. 기도 사도직을 하면서 수녀는 자신의 사도직을 매우 진지하게 기도의 주제로 삼으며 세상을 떠난 수녀님들에게 바치곤 했다. 앙투아넷 마리 수녀는 이런 말을 전하고 있다. “수녀님은 삶에서 알게 된 수녀님들과, 특히 샤든관구의 숙모인 메리 스티븐 수녀와 맺은 사랑의 관계를 자신의 기도를 통해 지켜나갔다.”
센터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즐겼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독서와 직소퍼즐 맞추기.” 개인적으로 정기구독을 하던 유니버스 불리틴(Universe Bulletin)과 더 타이딩(The Tidings)은 둘 다, 수녀가 클리블랜드에 있을 때나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나 계속 교회의 소식을 접하게 해 주었다.
이 시기에 수녀에게 있어 절정 중 하나는 독일, 네덜란드, 로마와 수녀회 순례에 참여했던 기회였다. 다양한 관구 소속 수녀들을 만나 함께 여행했던 이 기회는, 노틀담 수녀회가 국제 수녀회이며, 전세계에 걸쳐 같은 정신을 공유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수녀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2010년, 메리 도나메이 수녀는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회복하기는 했지만 이 일로 인해 잘 걸을 수가 없었다. 수녀는 2013년에 뉴베리 파크에 있는 병자들의 성모님 휴양소로 옮겨갔다.
메리 도나메이 수녀는 살아가면서 항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각별히 가깝게 느꼈는데, 단지 성모님이 입회 전후로 자신의 주보여서가 아니라 수녀 자신이 설명하듯, “삶에서 특별했던 세 가지 사건이 토요일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에 태어났고, 토요일에 입회했고, 토요일에 종신선서를 발했다.” 마침내 메리 도나메이 수녀는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이른 저녁에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조용히 떠나갔다.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