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카멜리타 수녀 (Sister Mary Carmelita) ND 3765 ⇒ PDF Download
에드나 크리스티나 와그너 (Edna Christina WAGNER)
미국, 오하이오 샤든 그리스도 왕 관구
출 생: 1922년 9월 4일 오하이오 마실론
서 원: 1942년 8월 17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15년 4월 25일 샤든 건강관리 센터
장 례: 2015년 5월 1일 오하이오 샤든
매 장: 2015년 5월 1일 샤든 부활묘지
에드나와 에드나의 쌍둥이 동생 랄프는 윌리암과 마사(호프만) 와그너의 사이에서 태어나 다른 세 형제와 함께 오하이오 나바르 외곽지역의 농장에서 자라났다. 각자가 에너지와 근면함으로 서로에게 기여하며 기쁨과 어려움의 시기를 함께 했다. 에드나는 평생 가족들의 방문과 활동과 경축행사를 즐기며 소중히 여겼고, 가족들이나 공동체의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기를 몹시 좋아했다.
1935년 성체 대회와 숙모 할머니 메리 아녜타 수녀의 방문을 위해 클리블랜드에 가 있는 동안 에드나는 노틀담 수녀들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때 아스피랑으로서 클리블랜드의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니게 되었으며 1940년 2월 2일 청원자로 수녀회에 입회했다. 에드나는 착복 때 메리 카멜리타 수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련기에는 주방에서 일했고, 서원 후 첫 번째 소임으로 오하이오 노스 리지빌 수녀원에서 요리와 집안을 돌보았다. 또한 조리사나 흔히 제의방 담당 수녀로서 다른 본당 학교에 파견되기도 했다. 육신과 정신의 강인함 뿐만 아니라 수녀가 집에서 배웠던 살림에 대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수녀는 곧 대리 교사가 필요해 지면서 교실에 들어갔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소임외에도 전일 근무 교직을 맡게 되었다. 메리 카멜리타 수녀는 클리블랜드 성 요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와 버지니아에서 45년간 초등부 아동들을 가르쳤다. 수녀는 아이들에게 첫 영성체를 준비시키는 것을 유일무이한 특권으로써 각별히 여겼다.
1993년, 메리 카멜리타 수녀는 교직에서 물러나 본원의 제의방을 담당하게 되었다. 기도하는 자세와 세부사항에 대한 주의력은, 매일의 전례와 특별한 행사를 위해 모든 것이 마련되도록 하는데 함께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수녀가 죽을때까지 행했던 또 다른 사도직은 9월마다 열렸던 수녀들의 양품 판매를 위한 공예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정교한 십자수와 수예품, 식탁용 퀼트 접시받침, 독특한 동물 인형들이 수녀의 재능과 창의력을 과시하곤 했다. 수녀는 지아거 카운티 페어에서 상으로 주는 띠를 여러 번 수여했다.
2014년 11월에는 미주리에 있는 친구를 방문하던 중 병이 났고 쇠약해진 상태 때문에 3월까지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 후 건강 관리센터에 머물게 되었으며, 다시 카드 놀이를 할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힘을 되찾지는 못했다. 메리 카멜리타 수녀는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충실한 공동체 회원이자 수도자로서, 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러 곳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여인으로서 생을 체험했다. 수녀는 어떻게 사랑의 봉사에 자신을 자유롭게 내어주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제 하느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평안히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