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시에나 수녀(SISTER MARY SIENNA) ND 3701 ⇒ PDF Download
메리 프란치스 잉겔브링크(Mary Frances ENGELBRINK)
미국, 켄터키 커빙턴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 관구
출 생: 1915년 3월 25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서 원: 1935년 8월 13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4년 1월 20일 켄터키 커빙턴
장 례: 2014년 1월 23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4년 1월 24일 켄터키 커빙턴 수녀원 묘지
메리 프란치스 잉겔브링크는 1915년 3월 25일에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존과 에스텔라 레킹거의 4자녀 중 맏딸이자 외동딸로 태어났다. 몇 년 동안 메리 프란치스는 나뮤르 노틀담 수녀들이 가르치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1학년 때부터 수녀 교사가 되고 싶어서 어린 시절에 학교 놀이를 가장 즐겼다. 7학년이 되었을 때 프란치스의 가족이 오하이오 슈비오로 이사하여 노틀담 수녀회가 운영하는 성 마틴 학교 학생이 되었으며 이곳에서 수녀 교사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 더욱 커진다. 프란치스는 14세에 지원자가 되었다.
메리 시에나 수녀는 1935년 서원을 하고 50년이 넘도록 신시내티 대교구와 커빙턴 교구의 초등학교에서 사도직을 하며, 가르치고자 했던 꿈을 이루었다. 수녀는 아주 창의적인 교사여서 학생들이 배움을 재미있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수녀의 유머감각과 태연한 위트는 특별한 공동체의 날에 수녀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구상해낼 때도 발산되었기에, 모든 사람이 수녀가 진행하는 이후의 프로그램을 고대했다.
수녀는 자신이 예술적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미술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라는 요청을 받아 1959년 가톨릭 유니버시티 아메리카에서 미술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빌라 마돈나/토마스 모어 스쿨과 다른 여러 지역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 그 이후에는 예술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제목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미술 교과서를 집필했다. 한 교사는 이 책에 대해 “시에나 수녀는 배움의 경험을 참으로 단순하고 명확하게 수집하여 그 안에서 다년간 진행했던 미술 수업을 나누어 주고 있다.”고 적었다. 미술에 대한 자신의 열정에 대해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창조에 참여하는 일의 기쁨을 나눌 때 행복하다.”
자신을 3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했을 때 수녀는 “배움에 대한 관심”이라고 대답했다. 과연 수녀는 레즈 야구팀의 팬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컴퓨터를 배우는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에 관심을 가졌다. 수녀처럼 고령의 나이에 컴퓨터 작동에 대해 늘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수녀는 아름다운 수제 카드를 만들다가 마침내는 컴퓨터로 카드제작을 하기에 이르렀다.
수녀는 가까운 가족 관계를 유지했는데, 추도식에서 조카가 전한 영감어린 송사와 장례식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시에나 수녀는 가족가운데에서 지내는 것을 몹시 좋아했고 대가족이 서로 연계될 수 있도록 했으며 한번은 125명이 넘는 가족 모임을 주관하기도 했다.
메리 시에나 수녀는 가급적 오랫동안 자신의 미술실에서 일하고 사적인 공간에 머물면서 독립적으로 지냈으나 점차 쇠약해 지면서 루르드 홀로 옮겨야 했다. 수녀는 점차 힘이 다해 2014년 1월 20일 조용히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 앞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언제나 좋으신 하느님의 기쁨을 맛보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