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스테파니 수녀 (Sister Mary Stefanie) ND 4653 ⇒ PDF Download
전 메리 스티븐 수녀 (Sister Mary Steven)
메리 클리오 프리츠 (Mary Cleo FRITZ)
메리 캐틀린 프리츠 수녀와 메리 앤 아델 프리츠 수녀(사망)의 친자매
미국, 켄터키 커빙턴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 관구
출 생 1933년 6월 18일 켄터키 커빙턴
서 원 1953년 8월 25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3년 8월 28일 켄터키 커빙턴
장 례 2013년 8월 31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3년 8월 31일 켄터키 커빙턴 수녀원 묘지
메리 스테파니 수녀는 최근에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80세까지 사는 것, 다이아몬드 경축을 지내는 것, 천국에 가는 것이었다. 2013년 여름, 수녀는 이 모두를 이루었다.
메리 스테파니 수녀는 1933년 6월 18일 켄터키 커빙턴에서 스테판과 안나 프리츠의 11자녀 중 하나로 태어났다. 가족은 켄터키 커빙턴에 살았고 거기서 메리 클리오는 성 요한 초등학교를 다녔다. 8학년을 마친 다음에는 커빙턴 노틀담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여 이미 공동체에 속해 있던 두 언니, 메리 케틀린 수녀와 메리 앤 아델 수녀의 길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3년 8월 25일 서원하였다.
메리 스테파니 수녀는 다년간 건강 관리 분야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오하이오 신시내티 성 프란시스 병원에서 간호사와 약리학 학위를 얻었으며 역시 신시내티에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병원에서는 병원 사목 교육 양성과 원목 자격을 취득하였다.
메리 스테파니 수녀는 천성적으로 돌보는 사람이 되는 일에 끌렸고 병자와 노인들에게 대단한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간호사로서 여러 해를 본원과 켄터키 모어헤드의 성 클레어 메디컬 센터에서 일했으며 17년 동안 이 두 군데에서 원목 실장으로 지냈다. 원목 자격을 취득한 후에는 성 엘리사벳에서 10년간 봉사했는데 이곳에서 긍정적이고 매우 능력 있는 멤버로 인정받았다. 수녀는 사목 사도직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표현한 적이 있다. “타고난 성격이 워낙 예민하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고 돌봐주는 사람이 되는 일에 끌려서 그런가 봐요.” 수녀가 “활짝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을 때가 바로 이 사도직을 하면서였다.
건강 관리에 더하여 가끔 공동체 봉사에도 관여했는데 특히 수녀들을 위해 뛰어난 요리사가 되어 주기도 했다. 정기적 수녀원 바자회 외에도 수녀는 휴일을 위한 맛있는 사탕과 쿠키 만들기 같은 “가외”의 일을 즐겨 했다. 수녀의 유머 감각은 본원의 공동체 정신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가끔은 도서관이나 다른 책임을 도와주면서 본당 학교 일을 돕기도 했다.
힘이 쇠해 가면서 메리 스테파니 수녀는 루르드 홀 케어 센터의 사목적 케어로, 그리고 마침내는 사도적 기도로 계속해서 도움을 주었다. 수녀는 울혈성 심부전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가족과 수녀들은 천상 신랑께서 고향으로 수녀를 부르시기 전 마지막 몇 주 동안 인내하며 기다렸다.
부디 수녀님이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품 안에서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