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윌마 앤 수녀 (SISTER MARY WILMA ANN) ND 4413
메리 앤 위스만 (Mary Ann WISSMANN)
미국, 켄터키 커빙턴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 관구
출 생 : 1931 년 10 월 20 일 켄터키 커빙턴
서 원 : 1951 년 8 월 8 일 “ “
사 망 : 2013 년 5 월 11 일 “ “
장 례 : 2013 년 5 월 15 일 “ “
매 장 : 2013 년 5 월 16 일 켄터키 커빙턴 수녀원 묘지
메리 윌마 앤 수녀는 1931 년 10 월 20 일에 켄터키 커빙턴에서 태어났다. 둘 다 독일 출신이었던
테오도르와 앤 위스만은 5 자매를 두는 축복을 누렸는데 메리 윌마 앤 수녀가 맏이였다. 메리 앤은
켄터키 커빙턴에 있는 성 베네딕트 초등학교와 노틀담 아카데미를 다녔고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노틀담 수녀들을 알게 되었다. 앤은 자신을 가르쳐 주는 수녀들을 너무나 존경했고 “수녀님들은
행복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수도 성소에서 저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졸업반 때 입회하여 1951 년 8 월 8 일에 첫 서원을 하였다.
메리 윌마 앤 수녀는 커빙턴 교구와 신시내티에 있는 여러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던 교육자였다
1963 년에는 신시내티의 성모 대학에서 영양학 양성을 받았으며 훈련된 영양사로서 성 클레어 의료
센터와 성 챨스 양로원에서 다년간 사도직을 했다.
수녀는 재봉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입회 전에는 양장 학교에서 재봉 수업을 받았는데 이
재능은 나중에 관구 재봉실을 담당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20 년이 넘도록
가정 경제와 과학 교사로 지내기도 했다. 수녀는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믿도록 영감을 부여하는
일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오래 동안 이 사도직에서 얻은 우정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이전
교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메리 윌마 앤 수녀는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를 심화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은경축
때 “가톨릭 텔레그라프”에 실린 기사에서 수녀는 “나는 수도 생활에서 발견한 것들 때문에 다른
소녀들에게 이 길을 따라오라고 감히 용기를 주곤 한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으로써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성소를 육성하는 또 다른 수단은 신시내티 대교구의 성소국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수녀는 또한 커빙턴 교구의 교구 사목국 멤버이기도 했다.
1988 년 수녀는 관구 본원을 거처로 삼아 이 후 13 년 간을 노틀담 아카데미로 출근하며 가르쳤다.
2001 년에는 마지막 병을 앓을 때까지 재봉실을 담당하였다. 세상을 떠나기 약 1 년 전 윌마 앤 수녀는
근 위축성 측삭 경화증(ALS) 진단을 받았고 이로 인해 루르드 홀 관리 센터로 옮겨가야 했다. 비록
병이 점차적인 신체의 쇠퇴를 가져오긴 했지만 수녀는 절대로 유머 감각을 잃는 법이 없었고 될 수
있는 한 도움 없이 지내곤 했다.
가족들은 늘 수녀의 환영을 받았는데 아직 두 명의 자매인 조앤과 마지는 올덴부르그 프란치스코 회
회원으로 생존해 있고 여러 명의 조카들도 오랜 동안 수녀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냈다.
5 월 11 일 밤 회진하던 간호사들은 메리 윌마 앤 수녀가 하느님이 계신 고향으로 떠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디 수녀가 영원히 하느님의 사랑하는 품 안에서 기쁨과 평화 속에 살아가기를.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