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제임세타 Mary Jamesetta 수녀 ND 3781 PDF Download
로즐린 메리 크라프티 Roseline Mary KRAFTY
미국, 샤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21년 6월 13일 오하이오 베니스
서 원: 1941년 8월 11일 오하이오 톨레도
사 망: 2023년 2월 6일 오하이오 실바니아
장 례: 2023년 2월 9일 오하이오 와잇하우스
로즐린은 오하이오 베니스에서 마이클과 헬레나 (릴리) 크라프티의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5년 9월에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을 때 아스피랑이 되었다. 그리고 4년 후인 1939년 1월에 언니인 메리 월터 크라프티를 따라 톨레도의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다.
처음 몇 년간의 사도직은 수련소 요리사였다. 수녀는 메리 멘스 대학에서 교육학 학위를 받고 톨레도 교구의 가톨릭 본당 학교에서 3학년부터 8학년 사이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0년 내에 오하이오의 다양한 초등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직을 겸임했다.
수녀의 선교사적 마음은 수녀를 PNG로 이끌어 1967년부터 72년까지는 반즈에서 6학년을 가르쳤고 1993년부터 99년까지는 지원자 지도 수녀로서 도움을 주었다.
선교사로 지내던 시기의 사이사이에는 교사, 개인 교사, 교장, 회계, 경리 보조, 안내실 담당, 오하이오 와잇하우스의 리알 수녀원 분원 책임자 등 다양한 책임을 맡았다. 수녀는 80세였을 때 톨레도의 우술린 수녀원에서 안내실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는 사도직까지 수락했다.
1999년, 제임세타 수녀는 톨레도 성 미카엘 본당에서 자원 봉사 사도직을, 2004년부터 15년까지는 사목 사도직을 맡아 수행했다. 수녀는 그 후 평생 많은 성 미카엘 본당 신자들과 연락하며 지냈는데, 이는 단지 수녀가 기쁨과 웃음, 다른 이들에 대한 주의를 나누는 많은 방식 중 하나였을 뿐이다.
오하이오 와잇하우스의 노틀담 센터에서 거주하는 동안에는 노인 수녀들을 보조하기 위해 공동체 봉사안에서 자신의 많은 재능을 사용하곤 했다. 하루에 두번씩 손에 묵주를 들고 집에서 성모상까지 걷곤 했다. 그런 다음 보행기에 앉아서 성모님을 바라보고를 기도를 바쳤다. 그곳에 있는 수녀의 모습은 많은 수녀들에게 영감이 되었다.
수녀는 장수의 선물을 받아 활력과 휴머와 친절함으로 한 세기를 살았다. 2022년 12월, 수녀의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그 자신의 원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되었어요.” 메리 제임세타 수녀는 기꺼이 오하이오 실바니아의 로자리 케어 센터의 환자가 되었다. 더이상 방문객들과 긴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그들에게 현존하며 머물러 있었다.
2023년 2월 6일, 101를 일기로, 수도 서원 82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수녀는 영원한 고향에 들어갔다. 수녀는 할 수 있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봉사를 행하곤 했다. 수녀가 사랑의 하느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