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하인리타 수녀 (Sister Maria Heinrita) ND 4281 ⇒PDF Download
이다 부데 (Ida Budde)
독일, 코스펠드 여왕이신 마리아 관구
출 생 : 1928년 9월 27일 독일, 발스테데/드렌슈타인푸어트
서 원 : 1952년 4월 15일 알렌
사 망 : 2015년 6월 5일 훼히타 살루스
장 례 : 2015년 6월 12일 훼히타 수녀원 묘지
이다 부데는 발스슈테데에서 농부 하인리히 부데와 처녀명 네테브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아내 크리스틴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다는 다섯 명의 아이들 중 막내였다. 유년기는 2차 세계대전의 그늘 속에 있었으며 전쟁이 끝나갈 무렵 부모님의 농장이 파괴되었다. 이다는 온 힘을 다해 부데/헤른슈타인 농장을 재건하는 일을 도왔고, 진정으로 그 시골지역에 정이 들었다.
이다는 숙모였던 마리아 코르틸라 네테브룩 수녀들을 통해 노틀담 수녀들을 알게 되었지만, 이다가 훼히타 마리안하인에 있는 가정 관리 학교에서 교육받기 시작하면서 수녀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1949년, 이다는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마리아 하인리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하인리타 수녀는 1952년에 준비 기간을 거쳐 알렌의 성 미카엘 수도원에서 첫 서원을 발하였다.
수녀는 농부의 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일을 몹시 좋아했고 주방을 담당했을 때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동원했다. 여러 해 동안 마리엔하인의 가정관리 학교가 수녀의 작업 분야가 되었다. 수녀는 많은 에너지와 유머와 힘을 지니고 학생들 사이에서 일하곤 했는데 학생들은 수녀를 방문하러 와서 함께 지내던 시간을 감사와 기쁨으로 기억하고 있다.
1962년에는 마리엔하인이 저(低) 색소니에서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마리아 하인리타 수녀는 주방 관리를 맡아 수녀들과 많은 손님들의 모든 필요를 잘 돌보아 주었다. (여기까지는 수녀의 금경축을 맞아 지방신문에 실린 기록이며 수녀는 자신의 부고에 이를 인용하기를 원했다.)
2005년 8월 1일, 마리아 하인리타 수녀는 수녀가 누려 마땅한 은퇴기에 들어 마리엔하인의 공동체에서 작은 소임들을 수행했다. 2011년 8월 1일, 기력이 쇠하면서 살루스로 옮겨왔다. 수녀는 지대한 관심으로 공동체의 모든 행사에 참여했고 전구로써 우리를 지지하곤 했다.
2015년 6월 5일 오후, 마리아 하인리타 수녀는 하느님의 손에 자신의 삶을 돌려드렸다. 우리는 이제 수녀가 그분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리라 믿는다.
수녀는 상념 중에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글을 남겼다. 수녀의 글은 다음과 같다:
“나는 하느님의 손에서 생명을 받았고,
하느님의 손아래에서 나의 삶을 살았으며,
하느님의 손에 생명을 돌려드린다.“ 아우구스티누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 마리아 하인리타 부데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