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오틸리아 Maria Ottilia 수녀 ND 5169 PDF Download
오틸리아 웨블러 Ottilia WEBLER
브라질, 카노아스, 아파레시다 성모 관구
출 생: 1929년 7월 12일 산토 안토니아 다 파트룰랴
서 원: 1958년 2월 11일 파소 푼도
사 망: 2018년 4월 21일 레칸토 아파레시다, 카노아스
매 장: 2018년 4월 22일 수녀원 묘지, 카노아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태 25, 34
2018년 4월 21일, 주님께서 아파레시다 성모 관구를 방문하시어 당신의 딸, 마리아 오틸리아 수녀를 고향으로 불러가셨다. 수녀는 산토 안토니아 다 파트룰랴에서 11명의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여섯째로 태어났다. 부모인 헨리케와 카타리나 웨블러는 롤란테의 전원 지역에서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오틸리아는 25세가 되자 수도 생활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파소 푼도의 노틀담 수녀회의 청원자가 된다.
농장과 자연 한가운데에서 성장했기에 땅을 일구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수녀는 화초와 야채 밭을 가꾸는데 헌신하면서 공동체에도 이 타고난 체험을 전달했다. 여름에는 매우 이른 아침부터 밖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지면 기도와 개인 묵상을 위해 실내로 들어왔다.
가능한 한 공동체 활동에 참석했고 공동체 기도는 언제나 함께 했다. 수녀는 독서를 매우 좋아했으며 여가 시간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특별한 성모 신심을 키웠고 할 수 있을 때마다 미사에 참례했다. 마리아 오틸리아 수녀는 침묵의 여인이었다. 수녀는 소박하고 초탈한 방식으로 청빈을 살았다.
가족들과의 소통도 몹시 즐겼다. 웨블러 가(家) 식구 몇 명이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찾아 브라질의 다른 주(마토 그로소와 산타 카타리나)로 이사했을 때 수녀와의 연락이 끊겼었다. 형제들이 아주 멀리 있어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수녀에게는 큰 괴로움이었다. 그들을 찾으려는 수년간의 노력과 사제로서 마토 그로소에 사는 조카의 도움으로, 수녀는 가족 전체와 재회하는 기쁨을 누렸다.
타콰라의 콜레지오 산타 테레지냐에 있는 수녀들은 수녀의 연로하고 병든 모친을 받아들여 고령과 질병 중에 있는 수녀의 노모를 보살폈다. 수녀의 모친은 1978년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2009년, 마리아 오틸리아 수녀는 나이와 건강 문제로 인해 레칸토 아파레시다 공동체로 들어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간단한 소임을 하고 작업 요법 활동과 독서에 참여하면서 공동체에 기여했다.
마리아 오틸리아 수녀는 자신의 삶이라는 진흙을 성부께 넘겨드리며 고통과 병약함과 휠체어에 의지함을 통해 그분께서 자신을 빚으시도록 허락했다. 수녀는 항상 고요함과 신앙, 온순함과 감사를 보여주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크나큰 좋으심과 자비로써 당신의 딸을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에 받아들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