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아구스타 Maria Agusta 수녀 ND 5316 PDF Download
크리스티나 포니다 Christina Ponidah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착한 의견의 어머니 관구
출 생: 1939년 3월 2일 인도네시아 고데안
서 원: 1964년 7월 8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사 망: 2021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매 장: 2021년 11월 16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크리스티나 포니다는 회교도 가정인 세트로레죠와 무르티자에게서 난 세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들 중 맏이였다. 포니다는 1945년 9월 9일에 푸르발링가의 성 어거스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열흘 후 같은 성당에서 쇼마커 몬시뇰의 손에 견진성사를 받았다.
크리스티나 포니다는 1961년 8월 15일에 페칼롱간의 노틀담 청원소에 입회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의 수도 성소에 응답했다. 1962년 7월 8일, 착복을 하면서 마리아 아구스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양성기에는 노틀담 수녀회의 회원으로서 사랑을 키워갔으며 1964년 7월 8일에 첫 서원을 발할 때까지 계속해서 성소를 발전시키고 강화해갔다. 마리아 아구스타 수녀는 유기서원을 하면서 교육 사도직을 시작했다. 1970년 2월 2일, 수녀는 종신선서를 발했다.
푸르발링가의 성 비오 학교, 자카르타의 RICI 학교에서는 교육부서에서 일했고 페칼롱간의 성 비오 중학교에서는 교장이었으며, 산타 마리아 재단 이사회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페칼롱간의 성 요셉 공동체와 자카르타 노틀담 공동체 분원 책임자가 되었다.
마리아 아구스타 수녀는 매일의 삶에서 굳건하고 성실했으며 기도하는 여인이었고 규율을 지키고 부지런하며 책임감있고 온화했다. 언제나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모범이셨던 예수, 마리아, 요셉에게서 힘을 얻곤 했다. 페칼롱간은 수녀의 은퇴장소가 되어 그곳의 재봉실에서 일했다.
2019년 이후로, 수녀는 병으로 인해 더 이상 재봉실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고혈압, 진성 당뇨병, 뇌경색을 앓아 페칼롱간의 부디 라하유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모든 고통을 사랑하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위해 희생으로 바쳤다. 2021년 4월, 수녀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입원이 필요했다. 2021년 11월 15일, 마리아 아구스타 수녀는 페칼롱간의 부디 라하유 병원에서 하느님께서 계신 본향으로 조용히 떠나갔다.
평안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