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벤델리나 Maria Wendelina 수녀 ND 4798 PDF Download
이다 쉐밍 Ida Schemming
독일, 코스펠드, 여왕이신 마리아 관구
출 생: 1936년 5월 21일 프레든
서 원: 1957년 2월 27일 코스펠드
사 망: 2021년 11월 27일 코스펠드, 안넨탈 수녀원
장 례: 2021년 12월 1일 코스펠드, 수녀원 묘지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시편 27,8
이다 쉐밍, 마리아 벤델리나 수녀는 칠남매 중 세째였다. 이다는 1942년부터 1950년까지 프레든에서 학교에 다녔다. 그런 다음 부모님의 집에서 어머니의 일을 거들었다. 1952년에는 농장의 가정 도우미가 되었다. 1953년에는 반거루거 섬에서 우리 수녀들이 운영하던 어린이 요양소 “하우스 메레스슈테른”에서 일하게 되었다.
1954년, 이다는 코스펠드에 있는 우리 수녀회에 입회를 요청했다. 수도 양성을 마친 다음에는 복홀트, 말, 알라겐 등 수녀회의 다양한 분원에서 사도직을 했다. 그곳에서는 엄청난 투신으로 본당의 여러 어린이집에서 일했다.
유치원 교사로서의 양성 말고도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폭넓게 뒷받침할 수 있도록 몬테소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자세 교육 강좌와 조기 음악 교육에 대한 한층 심도있는 교육도 받았다.
마리아 벤델리나 수녀는 교장으로서 교육자, 학부모, 아이들의 대단한 인정을 받았다. 수녀의 교육 양식, 다정하고 다가가기 쉬운 행동방식, 아이들의 필요에 대한 대응성을 보면 진정 사도직의 중심에 아이들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후 1989년에 유치원 사도직에 마지막 작별을 고한 다음 수녀는 여러 좋은 경험에 대해 몹시 즐겨 이야기하곤 했다.
안넨탈 수녀원과 알렌/웨스트팔렌 분원에서의 사도직을 마쳤을 때는 빌러벡의 겔레베에 위치한 베네딕도 수도원의 게스트 하우스인 루드게리라스트로 파견되었다. 친절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지녔던 수녀는 투숙객들을 돌봄에 있어 축복이었다. 수녀는 “자취”를 남겼던 것이다.
2009년, 벤델리나 수녀는 안넨탈 수녀원으로 돌아와 여러 해 동안 동료 수녀를 도와 식당을 돌보았다. 수녀는 이 소임을 조용히 신중하게 해냈다.
마지막 몇 달간 마리아 벤델리나 수녀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변하면서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했다. 병원에서 긴 시간을 머문 다음 수녀원의 살루스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가능한 최고의 돌봄과 지원을 받았다. 수녀는 모든 협력자들에게 매우 감사하며 이를 반복해서 표현하곤 했다. 안전하고 든든하다고 여겼다. 자기 자신과 공동체와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차분함과 신뢰로써 하느님의 손에 생을 돌려드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구세주 오심에 대한 대림의 기다림은 이미 마리아 벤델리나 수녀에게 이루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