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 마리 Cristina Marie 수녀 ND 7302 PDF Download
크리스티나 죠세파 부츠코프스키 Cristina Josepha BUCZKOWSKI
미국, 샤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61년 3월 1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서 원: 2003년 7월 26일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사 망: 2025년 8월 27일 캘리포니아 두어테, 시티 오브 호프 암센터
크리스티나는 월터 부츠코프스키 씨와 아내 헬렌 부츠코프스키(처녀명 포들레스니)의 딸이었다. 세 명의 형제 한 명의 자매, 이렇게 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은 크리스티나가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크리스티나는 공립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캘리포니아 카마릴로에 있는 출신 본당인 성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에서 활동했고,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에서 인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중과 졸업 후에는 성 마리아 막달레나 청년 그룹의 핵심 멤버이자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리더십과 연민, 따뜻한 마음씨는 평생 지속되는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수십 년 후, 그룹 구성원 몇명은 수녀의 임종 때 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수녀는 청년 사목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노틀담 수녀회를 알게 되었다. 노틀담 수녀회의 한 수녀는 크리스티나에게서 수녀회의 정신을 발견하고 노틀담 수녀회 준회원이 되도록 권유했다. 기꺼이 수락하여 2000년에 SND 준회원 초기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십 대 시절 수도 생활을 고려했지만, 준회원이 된 후에야 자신이 노틀담 수녀회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서원 생활을 통해 자신과 그분의 백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크리스티나 마리 수녀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양한 교육 분야에서 오랜 세월을 교육자로 일했다. 우간다 부세에사 마을에서 선교사로 봉사할 기회를 얻어, 그곳의 세인트 줄리 모델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나중에는 교장으로 재직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후 힐리곤데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노력으로 저소득 지역에 방과후 개인교습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후 뉴멕시코에 있는 위탁 아동을 위한 대인 가정인 엘 란치토 데 로스 니뇨스에서 보모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텍사스 라레도에 있는 가톨릭 자선단체에서 일하며 사랑으로 이민자 공동체를 위해 일했다.
2025년 5월 꽤 심각한 병을 앓았는데 일종의 혈액암 진단을 받고 추가적 진료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송되었다. 수녀는 골수 기증자를 기다리던 중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티나 마리 수녀는 깊은 우정, 따뜻한 환대, 맛있는 요리,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유명했다. 수녀는 하느님께서 이끄신다고 여겨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갔는데, 흔히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향해 하느님을 따랐다. 수녀의 따뜻한 마음이 몹시 그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