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마리 Joan Marie 수녀 ND 5041 PDF Download
이전 메리 죠셉 Mary Josef 수녀
존 마리 렉커 Joan Marie RECKER
미국, 샤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40년 8월 18일 오하이오 라입식
서 원: 1960년 8월 16일 오하이오 톨레도
사 망: 2023년 10월 1일 오하이오 실바니아
장 례: 2023년 10월 6일 오하이오 톨레도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 아가 2,16
존 마리 렉커 수녀는 1850년에 독일에서 창설된 노틀담 수녀회의 기원을 기리는 날인 10월 1일 주일에 실바니아의 로사리 케어 센터에서 사망했다. 수녀는 83세였으며 서원 63년 째를 지내고 있었다. 창설자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와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의 카리스마와 정신을 나누는데 온 수도 생활을 보내던 이가 창립기념일에 그들과 함께 자리하게 되다니 얼마나 적절한가.
죠셉과 아그네스(슈뢰더) 렉커의 여덟 자녀 중 네째 태어난 존 마리는 톨레도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아스피랑이 되기 전에 세인트 메리 학교에 다녔다. 1962년, 톨레도 그리스도 왕 학교에서 7학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도 생활을 고려 중인 젊은 여성들의 양성 지도자로서 보낸 여러 해 중 1964년에는 처음으로 아스피랑 지도 수녀가 되었다. 1974년 청원자 지도 수녀가 되고 그 후 수련자 지도 수녀가 되기 전(1976-1988), 아스피랑 지도 수녀였을 때 1964년부터 74년까지 노틀담 아카데미와 노틀담 확장 대학에서 교편 생활도 병행했다. 수녀는 1988년 톨레도 관구에서 9년간 관구장직을 맡았을 때 우리 창설자처럼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항상 보살펴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라고 믿었다. 톨레도 교구의 총장이 되었지만 3개월도 못가서 로마 총참사로 선출되었고, 뒤이어 다시 선출되어 총 12년간 참사 직무가 계속되었다. 2011년에 오하이오로 되돌아온 다음에는 와잇하우스 리알 쇄신 센터의 식구가 되었다. “활동 속의 관상가”로 묘사되던 수녀는 2021년까지 영적 지도자였다. 그런 다음 페리스버그의 세인트 클레어 커먼스로, 이후에는 실바니아의 로사리 케어 센터로 이주해 왔는데 그곳은 수녀의 고통이 기도가 된 곳이었다. 방문객들은 수녀를 보고 돌아갈때 마다 수녀로부터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수녀는 깊이 기도하는 여인, 보기드문 경청과 민감성을 지닌 여인이요, 타인에게서 최상을 찾아내는 여인이었다. 노틀담 수녀회의 카리스마에 젖어있던 수녀는 하느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생활하며 많은 이들에게 증거했다. 카리스마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능력은 노틀담 수녀회 회헌에 대한 주해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카리스마를 진정성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갈망은 늘 커져만 갔다. 수녀는 우리가 갈망하는 하느님께서우리를 훨씬 더 열정적으로 갈망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나누어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연인의 동경으로 우리를 바라신다. 수녀의 죽음에서 존 마리 수녀는 그 갈망을 충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