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 메리 수녀 (Sister Elizabeth Mary) ND 4130 ⇒ PDF Download
이전 메리 크루치스 수녀(Sister Mary Crucis)
엘리사벳 메리 비벨하우젠 (Elizabeth Mary BIEBELHAUSEN)
미국, 오하이오 샤든 그리스도 왕 관구
출 생 : 1926년 2월 21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 1947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 2015년 8월 31일 샤든, 건강관리 센터
장 례 : 2015년 9월 9일 오하이오 샤든
매 장 : 2015년 9월 10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 묘지
엘리사벳은 죠셉과 마리 (파울하버) 비벨하우젠의 여섯 자녀 중 둘째였다. 베티에게는 가족이 언제나 아껴야 할 소중한 선물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 대한 보살핌은, 사랑을 베푸는 부모에 의해 양성되면서, 베티의 가족은 여가와 노동과 놀이로 이루어진 성장기에 있어 축복이었으며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베티와 언니 제인은 집에서 통학 한시간 거리인 클리블랜드 노틀담 아카데미에 다녔다. 졸업 후, 베티는 1944년 9월 8일에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는데, 어느 정도는 숙모할머님이었던 톨레도 관구의 메리 알페리아 추어린든 수녀의 기도 덕분이기도 했다. 착복때 수녀는 메리 크루치스라는 수도명을 받았지만 나중에 세례명 엘리사벳 메리로 되돌아간다.
엘리사벳 메리 수녀는 사우스 유클리드의 노틀담 대학에서 가정 경제 학위를 취득하면서 졸업한 후 고등학교 교실에서 교사 경력을 시작하였다. 1954년, 수녀는 인도 선교를 지원했다. 이듬해 늦은 밤에 걸려온 메리 안셈 어머니의 전화는 수녀에게 출발 준비를 위해 겨우 며칠 간의 말미만을 주었다. 화물선을 타고 향했던 인도여행은 거의 한달이 걸렸다. 수녀는 이 특별한 부르심안에서 하느님의 충실한 사랑에 의지했고 열정과 창조적 정신으로 사도직을 행하고자 하는 갈망을 굳건히 유지했다.
이 시간(40년) 동안 인도에서 했던 사도직들은 수녀가 이루었던 모든 일들, 특히 자말푸르와 파트나에서 행했던 이들을 약간만 비추어줄 뿐이다. 수녀는 경리, 운전기사, 관리, 사회복지사/사목자, 교사, 주방과 건축 감독관으로 봉사했다 – 음식을 다루는 직원들을 교육하고, 수천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선교지 인도의 기초가 자라나 아프리카에 스스로의 선교지를 둔 번성하는 두 개의 관구가 되도록 도왔다. 심지어는 자신의 요리책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너도 요리할 수 있어.” 그리고 그 요리책은 아직도 사용 중이다!
엘리사벳 메리 수녀는 1995년에 샤든으로 돌아왔다. 선교사적 정신과 빈자중의 빈자들을 섬겼던 체험 때문에 관구 선교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최근 몇 년간은 수녀의 신체적 상태로 인해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게 되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일을 하라고 맡기시지 않았다. 그분은 우리에게 행해야 할 사랑의 계약을 내려주셨다….모든 일이 실패할 때조차도”라는 자신의 수도 생활의 주제에 자주 재 투신하곤 했다. 수녀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늘 깊은 기도와 희망의 여인으로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엘리사벳 메리 수녀의 지칠줄 모르는 선교사적 정신에 감사하며, 수녀의 신앙과 신뢰, 투신과 충실성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이제 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영원한 품 속에서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