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테레즈 Mary Therese 수녀 ND 4965 PDF Download
(이전 메리 세인트 피우스 Mary St. Pius 수녀)
메리 테레즈 브라운 Mary Therese BROWN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7년 12월 3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57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4년 5월 21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4년 5월 31일 샤든, 부활 묘지
메리 테레즈는 로렌스 브라운과 마가렛(그루비스) 브라운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 중 맏이였다. 가족이 성장함에 따라 하느님의 축복에 대한 사랑과 흔들리지 않는 신앙도 자라났다. 아이들은 성 그레고리 본당과 학교에 다녔다. 메리 테레즈는 어릴 때부터 학교와 모든 과목, 특히 미술과 수녀들이 키워준선교 정신을 좋아했다. 지원자로서 노틀담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1955년 2월 2일에 청원자가 되었다. 메리 테레즈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교사였던 수녀님들의 모범 때문에 우리 공동체에 왔다. 그들의 예수님 중심, 공동체 생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철저한 가르침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 큰 인상을 받았다.” 착복하면서 메리 테레즈는 메리 세인트 비오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메리 테레즈 수녀는 오하이오 사우스 유클리드에 있는 노틀담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등학교 라틴어와 미술을 가르칠 자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오하이오 주 볼링 그린 주립 대학교에서 판화, 조각, 미술사를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35년 동안 수녀는 자신의 지식과 신앙, 예술적 재능을 오하이오, 버지니아, 플로리다의 학생들과 나누었다. 교육 스타일은 사랑이 담긴 것이었고 온화했으며 확고하면서도 기발했다. 드라마 연출가로서 수녀의 창의성과 실용성은 활력있게 표현되었다. 학업을 계속하여 무대 세트 제작을 위한 목공 및 용접 기술도 습득했다. 학생들은 수녀의 지도하에 잘 성장해 나갔다. 수녀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알고 사랑한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
1995년, 메리 테레즈 수녀는 오하이오와 노스 캐롤라이나의 본당에서 사목 봉사자, 종교 교육 및 성인 신앙 교육 책임자로 지냈던 15년간의 사도직을 시작했다. 수녀는 성인들의 신앙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 특히 보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녀의 삶은 수녀가 만나고, 함께 일하고, 친구라고 불렀던 이들로 인해 풍요로워졌다.
2010년에는 샤든으로 이사하여 계속해서 활동을 돕고 예술적 재능을 나누었다. 인도 봉사 활동을 위해 SND 세계 선교부와 협력했으며 동아프리카의 젊은 자매들과 편지 쓰기 파트너십을 맺었다. 수녀들은 메리 테레즈 수녀의 준비된 웃음, 관대한 마음, 영혼의 자유를 즐기고 영감을 받았다. 수녀의 영성과 창의성은 관구 본원과 베타니 피정 센터 성당을 장식했던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표현되었다.
메리 테레즈 수녀는 우리가 모든 곳에서, 즉 광대한 창조물와 단순한 공예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수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나를 가르쳐 주고 나중에 친구와 멘토가 된 수녀들의 모범을 통해, 내가 사랑하게 된 이들과 함께 했던 다양한 사도직을 통해, 그리고 전문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도록 제공받았던 기회를 통해 수도생활을 지속할 힘을 얻었다.”
메리 테레즈 수녀가 좋으시고 사랑에 넘치시는 하느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