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테레시타 Mary Teresita 수녀 ND 4039 Teresita+K
마리앤 버나딘 그레스코 Marianne Bernardine GRESKO
미국, 오하이오 샤든, 그리스도 왕 관구
출 생 1926년 1월 1일 펜실베니아 스타포드
서 원 1945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18년 6월 29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장 례 2018년 7월 3일 오하이오 샤든, 관구 본원
매 장 2018년 7월 5일 오하이오 샤든, 부활묘지
하느님의 귀중한 새해 선물이 미카엘과 메리 엘리사벳(푹스) 그레스코와 그들의 한살배기 딸인 아그네스에게 내렸다. – 마리앤 버나딘의 출생이었다! 가족은 곧 펜실베니아에서 클리블랜드로 이사하여 성 웬델린 본당의 구성원이 되었는데, 아그네스는 후에 그 곳에서 성당 올갠 반주자가 되었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던 마리앤은 중요한 성가대원이었다. 그레스코씨는 식료품점을 운영했고 딸들은 매일 자기들이 담당하던 것들에 대한 소임을 했다. 부모의 깊은 신앙, 슬로바키아 유산과 문화에 대한 긍지, 본당 청년 그룹 참여는 마리애의 성격이 형성되던 시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마리앤은 초등학교와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교사들로 사랑하고 존경하던 노틀담 수녀들을 높이 샀다. 마리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일치하고 양친의 허락과 축복을 받으며 1942년 9월 8일, 노틀담 수녀회의 청원자로서 입회했다. 노틀담 아카데미는 이듬해 6월에 졸업했다. 그리고 착복하면서 메리 테레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교사에 대한 수요가 컸기에 2년차 수련자로서, 또 이후의 10년간 중등부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파견되었다. 그런 다음에는 노틀담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인디애나 주의 노틀담 대학교에서 영어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분야에 몸담았던 수녀의 사도직은 50년 이상 계속되었다. 1969년, 메리 테레시타 수녀는 클리블랜드 센트럴 가톨릭 고등학교의 양성과 네 군데 가톨릭 본당 고등학교의 합병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담당자의 보조가 되었다. 학교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수업과 활동을 위해 버스로 세 개 캠퍼스를 오가는 것으로 운영되었다. 1972년에는 북 캐롤라이나의 라레이로 파견되어 다시 개교된 카디널 기본즈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일했다. 수년간 사도직을 하는 곳마다 수녀는 합창과 음악 그룹 연주를 지도했고 청중들에게는 기쁨을 주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감과 공동체 정신을 불어넣었다.
메리 테레시타 수녀는 존 캐롤 대학교에서 정식 전문 상담인 자격을 얻어 11년간 레지나 고등학교에서 전문 상담사로 사도직을 수행했다. 수녀는 여학생들을 사랑했으며, 특히 계속적인 교육을 통해 이들의 잠재력 실현을 추구하도록 돕는 일을 특권으로 여겼다.
1998년에 관구 본원으로 돌아와서도 안내실, 문서실, 이동 코디네이터, 기도 전화선 등 필요한 곳에서 도움을 주며 사도직을 계속했다. 수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내가 하는 일과 나의 현존을 사랑해요.”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충실성이 늘 감사하던 메리 테레시타 수녀는 최근 몇 달간 신체적 상태가 악화될 때도 강인한 정신의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수녀는 마지막 몇 년 동안 꾸준한 노래, 허밍, 휘파람을 사랑하는 분께 대한 지속적인 기도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 그분의 현존 안에서 안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