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재클린 Mary Jacquelyn 수녀 ND 5285 PDF Download
(이전 메리 죠셉 프랭크 Mary Joseph Frank 수녀)
재클린 앤 세프코빅 Jacquelyn Anne SEFCOVIC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38년 12월 22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서 원: 1959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2025년 3월 5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5년 3월 13일 샤든, 부활 묘지
재클린은 찰스와 버지니아(카투스카크) 세프코빅의 첫째이자 유일한 딸이었다. 재클린과 두 남동생은 사랑을 만끽하며 자랐다. 집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활기찬 곳이었다. 이 어린 시절에 형성된 강한 유대감은 재클린의 인생 내내 지속되었다. 도전이 찾아오면 믿음과 신뢰로 맞이했다. 가족의 이사로 인해 재클린은 여러 초등학교에 다녔고,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수녀가 되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틀담 수녀들이 일하는 클리블랜드의 성 미카엘 고등학교에 등록한 후, 수도 생활에 대한 열망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던 해 1월에 노틀담 아카데미에 아스피랑으로 입학했다. 1957년 2월 2일에 청원자가 되었으며, 착복하면서 메리 죠셉 프랭크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수련자로서 메리 재클린 수녀는 공동체에서 수녀들에게 봉사하는 오랜 사도직을 시작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초기 교육을 통해 유연성과 가사 기술에 대한 지식을 다양한 사도직에 적용할 수 있었다. 수녀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 헌신했고 봉사하는 것을 즐겼다.
수녀의 첫 번째 소임은 관구 본원 재봉실에서 돕는 것이었다. 14년 이상을 사랑으로써 재봉 기술을 터득했고 수녀들을 위해 만들거나 수리하는 모든 일에 세심했다. 재봉실에 있다가 여자 고등학교이자 기숙 학교였던 버지니아주 미들버그에 있는 노틀담 아카데미로 옮겨갔다. 여기서는 가사 서비스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수녀는 집과 학교를 관리하는 여성들을 담당했다. 그들과 학생들,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메리 재클린 수녀는 많은 소녀들에게 가정을 가정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가사 기술을 가르쳐서 감사와 존경을 받았다. 식탁을 차리고, 장식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것, 모든 것이 중요했다.
1987년, 수녀는 샤든 관구 본원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사도직을 수행했으며,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도움을 주었다. 수녀는 수년 동안 건강 관리 센터에서 안내실 담당으로 일했고 비서 업무를 도왔다. 아마도 30년 이상 동안 수녀와 직원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인 사도직은 식품 봉사에 대한 수녀의 헌신이었을 것이다.
재키 수녀는 해야 할 일을 예리하게 살폈고, 사심없이 기여했으며, 바쁜 것을 좋아했고, 인정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든 것을 제대로, 성실하게 해냈다. 수녀는 지난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식품 봉사 사도직에 참여했다.
메리 재클린 수녀는 겸손하고 근면하며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매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마음의 소원이었다. 예수님에 대한 수녀의 사랑은 단순하고 깊고 매우 개인적이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었던 수녀의 은사에 감사드린다. 평화의 안식을 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