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오드리 Mary Audrey 수녀 ND 4550 PDF Download
이전 메리 레오나 Mary Leona 수녀
오드리 프란시스 크루츠 Audrey Frances Kreuz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 원죄 없으신 성모 관구
출 생: 1930년 5월 11일 오하이오 스완튼
서 원: 1950년 8월 16일 오하이오, 톨레도
사 망: 2017년 11월 6일 오하이오, 톨레도
장 례: 2017년 11월 9일 오하이오, 와잇하우스
매 장: 2017년 11월 10일 오하이오, 톨레도, 부활묘지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예레미야 31장3절)
11월 6일 아침, 메리 오드리 수녀는 지상에서의 여정을 마감했다. 이전에 메리 레오나 수녀라고 알려진 87세의 메리 오드리 수녀는 존과 레오나(랑엔더퍼) 크루츠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덟 명의 자녀 중 세 째였다. 오드리는 정원일, 재봉, 요리등의 취미를 개발시켰던 오하이오 스완튼 농장에서 자라났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학교와 노틀담 아카데미를 마친 뒤, 1948년 8월에 노틀담 수녀로서 정식 양성을 시작했다. 메리 오드리 수녀는 세상을 떠난 메리 안셈 랑엔더퍼 어머니의 조카였다.
메리 오드리 수녀의 사도직 분야는 교육이였다. 교장으로서 수녀는 앞을 내다보는 비전과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수녀는 톨레도뿐만 아니라 미시건과 인디애나 교구에 있는 여러 곳의 가톨릭 초등학교에서 교사, 교장으로서 53년간 교육분야에서 종사했다. 수녀는 어린이들의 영성에 자주 경탄하며 그들에게 견진성사를 준비시키는 일을 특권으로 여겼다. 반쯤 은퇴 시기에 들었을 때와 본격적인 은퇴기중에는 노틀담 아카데미, 문맹 퇴치 프로그램, 여성을 위한 축복 프로그램에서 가르쳤다. 활기차고 배려심 많고 강인했던 수녀는 공동체와 교구 차원에서 리더십 역할을 수행했다.
가족의 채소 농장에서 싹을 옮겨 심는 기술을 배운 수녀에게 꽃과 식물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수녀는 음악, 노래를 즐겼다. 하느님께서 그에 맞는 목소리를 깜박 잊고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지만 말이다. 수녀는 또한 아주 뛰어난 재봉사였다. 가정 경제 분야에서 교육받은 수녀는 의복을 고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메리 오드리 수녀는 공동체와 가족과 강한 사랑의 유대를 체험했다. 수녀의 경청하는 마음은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내 놓으면서도 상대방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했다. 수녀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삶의 질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수 년간 여러 차례의 수술과 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수녀는 공동체에 봉사하는데 자신을 봉헌했다. 결코 멈추지 않는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삶의 모든 질곡, 언덕과 계곡을 거칠 때 메리 오드리 수녀를 지탱해 주었고 수녀의 마음을 예수님의 평화로 지켜주었다. 이제는 그분의 빛 안에서 기쁘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