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에반젤리타 수녀 (Sister Mary Evangelita) ND 3732 ⇒ PDF Download
도로시 스펙톨드 (Dorothy SPECHTHOLD)
미국, 켄터키 커빙턴 원죄 없으신 성모님 관구
출 생 1917년 2월 27일 오하이오 신시내티
서 원 1940년 8월 17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14년 6월 30일 켄터키 커빙턴
장 례 2014년 7월 3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14년 7월 3일 켄터키 커빙턴 수녀원 묘지
도로시 스펙톨드는 죠지와 오틸리아 스텐져 스펙톨드의 여섯 자녀 중 둘째였다. 큰오빠 클레런스는 7세 때 사망했고, 아버지는 약사였는데 도로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약국 위편에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던 시기에 아버지는 병에 감염되어 3일만에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므로 어머니는 혼자 남아 다섯 아이들을 키웠다.
메리 에반젤리타 수녀는 노틀담 수녀들이 가르치는 성 아녜스 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수녀들의 기쁨과 서로를 대하는 사랑의 자세에 감명을 받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자신의 성소를 지켜달라고 성모님께 청하며 밤마다 성모송을 세 번씩 바쳤다. 졸업 후에는 콤터미터 학교에서 과정을 마치고 신시내티 밀링 머신 회사의 코스트 부서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그리고 식별의 시간을 보낸 다음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940년 8월 17일 서원하였다.
수녀는 길고 생산적이던 삶에서 다양한 사도직에 임했다. 교육과 행정에서 학위를 받고 나서는 오하이오와 켄터키의 여러 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일했는데, 이 시간 중 15년간을 오하이오 셰비오의 성 마틴 학교에서 보냈다. 다양한 분원에서 분원장 역할을 맡기도 했고 로마에서 열리는 총회에 두 번이나 선출되기도 했다. 1965-71년 사이에는, 관구 1참사이자 유기서원장으로 봉사했다. 이 시기에 여러 가까운 유대가 맺어졌고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과도 계속 연락을 유지하며 지냈다. 이들뿐만 아니라 친지들과 직원들도 수녀가 훌륭한 경청자인 동시에 지혜와 친절로 자신들에게 응답하여 준다고 느꼈다. 수녀는 공동체 안에서도 많은 수녀들의 친구였다.
상담으로 학위를 취득한 뒤 메리 에반젤리타 수녀는 비숍 브로싸트 고등학교에서 6년간 상담사로 봉사했다. 고등학교에서 사도직을 수행한 다음에는 성 요셉 하이츠로 옮겨와 루르드 홀에서 소임하며 은퇴 전, 은퇴, 안내 코디네이터가 되었고 루르드 홀 활동을 조율하였으며 그곳을 방문하는 수녀로 봉사하였다.
메리 에반젤리타 수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을 몹시 좋아했다. 시력과 청력이 서서히 쇠퇴해갔지만 그 동안 굳건한 관계들로 맺어진 친구들은 수녀를 방문하는 일에 있어 매우 충실했다. 몇 명은 수녀 생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침대 곁을 지키기도 했다. 2014년 6월 30일, 메리 에반젤리타 수녀는 97세를 일기로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갔다.
하느님께서 영원히 수녀의 기쁨이 되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