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아르카나 Mary Archana 수녀 ND 6042 PDF Download
애니 카니암파람필 Annie Kaniamparampil
인도 방갈로르, 성모 방문 관구
출 생: 1931년 11월 17일 케랄라, 알레피, 타탐팔리
서 원: 1968년 1월 6일 비하르, 자말푸르
사 망: 2024년 7월 7일 마이소르 노틀담 수녀원
장 례: 2024년 7월 8일 마이소르, 노틀담 수녀원,
매 장: 2024년 7월 8일 마이소르, 힌칼, SND 묘지
메리 아르카나(애니 카니암파람필) 수녀는 케랄라 알레피의 타탐팔리 성 미카엘 본당에서 요셉과 메리 카니암파람필의 10남매 중 여섯째 아이로 태어났다. 애니는 알레피의 성 요셉 고등학교와 에르나쿨람의 성 테레사 대학에서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마쳤다. 그리고 마운트 카멜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케랄라 대학교 코타얌 캠퍼스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애니는 자서전에서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좋은 가톨릭 교육을 통해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되는 풍요로움을 주기를 바랐다고 기록했다. 교사가 되었고 가르멜 수녀회가 운영하는 호스텔에 머물렀다. 그러다 한 신부의 지도를 통해 자신의 수도 성소를 발견했다. 1964년, 애니는 동료 교사 중 한 명(메리 쇼바나 수녀)과 함께 파트나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여 인도 북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애니는 훈련된 교사로서 수녀회에 입회했기 때문에 정식 학업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나이와 경험을 고려하여 1966년 1월 1년 6개월 동안 지원자로 지낸 후 수련소에 받아들여 졌다. 수녀는 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영어와 힌디어를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뛰어난 교사였기 때문에 수학에 둔감한 학생들도 수학과목을 통과할 수 있었다. 수녀는 1968년부터 2000년까지 여러 노틀담 학교에서 활발한 교육 사도직을 펼쳐 나갔다.
2001년부터 2019년까지는 부임한 지역 사회와 학교에서 재정 관리 및 유지 관리 사도직을 담당했다. 수녀는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한 기쁨과 열정으로 지역사회와 학교의 모든 이들에게 다가갔다. 2020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기도와 현존 사도직을 시작했을 때, 매우 민감하고 활동적이었으며 세부 사항에 대한 예리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녀는 공동체의 젊은 구성원들을 특별히 돌보았고, 특히 통계학 공부를 도와주곤 했다. 자신이 가르쳤던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수많은 뮤지컬에 필요한 환상적인 소품을 만드는 데 재능이 있었다.
수녀는 2023년에 새로 지어진 샬롬 사단(평화의 집)으로 이사하기를 바랐다가, 이곳의 첫 번째 입주자가 되었다. 수녀는 이곳 공동체의 연로한 수녀들을 위해 마련된 일정을 충실히 따르고 간호사와 다른 간병인의 지시를 따랐다. 수녀는 성당의 성체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지내는 동안에는 불편함을 영웅적으로 견뎌냈다. 때가 되면 이곳 수녀원에서 자신의 영혼을 주님이자 스승께 내어드리고 싶어 했는데, 2024년 7월 7일 오전 4시 30분이 그 순간이 되었다. 수녀의 영혼이 평화의 안식을 누리기를. 우리는 정신과 카리스마를 깊이 간직하고 살았던 위대한 선교사, 진정한 노틀담의 수녀를 잃었다. 수녀의 근면과 열정, 삶에 대한 사랑은 매우 전염성이 강했다. 메리 아르카나 수녀는 사랑, 감사, 소속감, 삶에 대한 열정, 온화함, 평화의 유산을 남겼다.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는 수녀의 환한 미소와 따뜻한 웃음은 여전히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킬 것이다. 수녀는 하느님의 창조 은하계에서 보기 드물고 값진 보석이었다. 준비하러 간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지낼 곳을 마련하러 간다”. 사랑하는 마리아 아르카나 수녀님, 평안히 쉬시고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