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아니타 수녀 (Sister Mary Anita) ND 2978 ⇒ PDF Download
헬렌 레오나 호넥 (Helen Leona Hornack)
캘리포니아 신비로운 장미 관구
출 생 : 1914년 7월 21일 미시건 메릴
서 원 : 1934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사 망 : 2014년 3월 23일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메리 아니타 수녀는 죠셉과 메리 제이콥 호넥의 8번째 자녀였다. 수녀는 어린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였으며 종교적 가치에 중점을 둔 매우 가족 중심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다고 기억하였다. 수녀는 자서전에 “우리가 숙제를 하려고 식탁에 둘러앉으면, 아버지가 ‘교리 먼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라고 적고 있다.
헬렌이 아직 아이였을 때 호넥가(家)는 오하이오 클리블랜드로 이사해왔고 헬렌은 노틀담 수녀회가 운영하는 성 라디슬라우스 학교에 입학했다. 헬렌은 다섯 살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다. 동시에 “수녀”의 성소도 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성소가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1931년, 헬렌은 아스피랑으로 지내다가 이듬해 우리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언니 베로니카(메리 플로렛 수녀)는 이미 우리 수녀회의 회원이었다. 메리 아니타 수녀가 된 헬렌은 1934년 8월 16일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서 서원하였다.
다음 해 9월, 메리 아니타 수녀는 56년간을 교사와 행정인으로서 우선 오하이오에서, 그리고 1963년부터는 캘리포니아 리마의 성 로사, 메이우드, 시에나의 성 베르나딘, 우드랜드 힐, 성 메리 막달레나, 카마릴로에서 지냈다. 이 시기에 메리 아니타 수녀의 우선적인 관심은 “학교와 수녀원에 있는 수녀들에게 쾌적함을 주는 것이었다.” 수녀는 “집안 일을 위해 몸을 바쳐 일했다” – 청소, 방 정리 및 장식, 수녀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 계획 등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와 동시에 수녀는 교육에도 헌신했다. 2009년, 리마의 학생이었던 알린 스튜어트 버래규는 이렇게 썼다. “메리 아니타 수녀님, 수녀님께서는 우리 모든 학생들에게 실로 엄청난 모범이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말하기, 읽기, 셈하기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강하되 배려하고, 경쟁하되 공정할 것과, 항상 친절을 보여줄 것을 배웠습니다. 수녀님께서 제게, 또 수녀님의 교직 생활 내내 셀 수도 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힘이 되어 주셨는지 알려드릴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커다란 축복처럼 여겨집니다.”
1997년에 메리 아니타 수녀님은 벤투라에 있는 성모 승천 수녀원으로 파견되어 5년간 봉사했고 2002년에는 새로운 사도직을 받아 노틀담 센터로 왔다. 그것은 기도 사도직이었다.
이 시간에 수녀는 예수회의 저자 제임스 마틴 신부와 서신 왕래를 시작했다. 수녀는 올해 7월에 맞이할 100회 생일 뿐 아니라 서원 축성 80주년 축하를 몹시 기다렸다. 경축일을 알게 된 신부는 최근에 이렇게 적었다. “수녀님, 수녀님의 관대함을 생각하면 제 마음이 기쁨에 넘칩니다. 수녀님께서 하신 모든 선행을 생각해 보십시오…얼마나 많고 많은 삶에 감동을 주셨을까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얼마나 경이로운 방식으로 수녀님을 사용하셨는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녀님의 첫 번째 ‘예’에서 시작되었지요…” 우연히도 수녀는 2014년 3월 23일 주일 이른 아침, 조용히 자신의 마지막 “예”를 말할 때 신부의 책 예수, 순례 중 “예”라는 제목으로 된 성모 영보에 관한 장(章)을 읽고 있었다. 메리 아니타 수녀의 삶의 경축과 매장 미사는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타우젠드 옥스 노틀담 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부디 수녀가 천국에서 100번째 생일을 온전히 즐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