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즈 안토니Mary Rose Anthony 수녀 ND 4543 PDF Download
마가렛 메리 발라드 Margaret Mary Ballard
미국, 캘리포니아 타우젠드 옥스 신비로운 장미 관구
출 생: 1930년 7월 11일 아이오와 디모인
서 원: 1951년 8월 23일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사 망: 2017년 6월 25일 캘리포니아 뉴베리 파크 병자들의 성모님 요양원
매 장: 2017년 7월 6일 캘리포니아 시미 밸리, 성모 승천 묘지
보십시오,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의 죽음으로 신비로운 장미 관구 역사는 중요한 한 장(章)을 마감하게 되었다. 1947년 총회 선언문은 캘리포니아에 청원소를 열 자격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1948년 10월 7일 마가렛 메리 “페기” 발라드의 입회는 서쪽 해안가에 주둔하던 수녀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게다가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의 수도 생활에서 매번 획기적이었던 단계들은 신비로운 장미 관구에서도 첫 번째 착복, 첫 번째 유기선서, 첫 번째 종신 선서 등 역사적인 “첫 번째”였다. 수녀는 이러한 초창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기록했다. “수녀님들과 내가 했던 모든 일이 새로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실험적이었다.”
마가렛 메리 발라드는 고든과 도로시 발라드의 무념독녀 외딸이었다. 페기는 디모인에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녔다. 하지만 1941년에는 가족이 캘리포니아LA로 이사했고 외동딸을 노틀담 수녀들이 가르치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학교에 7학년으로 입학시켰다. 페기는 1948년 성녀 아녜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수녀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학교에서 노틀담 수녀들 아래 공부했었는데 나중에 스스로 설명했듯이 “수녀님들이 단순하고 자애롭고 진정으로 서로에게 헌신한다고 생각했다.”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는 수도 생활 초기부터 특히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1952년 초, 수녀는 북,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교사 혹은 교장, 혹은 두 가지 역할로서 봉사했다. 1990년에는 시미 밸리에서 리마의 성녀 로사 학교에서 종교교육 담당자가 되었는데 이는 수녀가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아끼던 사도직이었다.
교리교사가 되려고 준비 중이던 1980년대 중반에 수녀를 처음 만났던 한 젊은 여성은 수녀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님은 우리의 신앙과 교회에서 일어났던 최근의 변화를 관통하던 영성적이고 지적이고 현대적인 안내자였다. 또한 우리가 사도직을 행할 어린이들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의 특별한 추억 중에는 샤든의 사도직 국제 회의와 코스펠드에서의 수녀회 창설 150주년 행사가 자리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오하이오에서 캘리포니아로 파견된 수녀들의 “뿌리”의 가치를 알게 했을 뿐만 아니라 수녀회의 국제성을 체험하고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와 익나시아 수녀의 고향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002년,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는 타우젠드 옥스 노틀담 센터로 은퇴하여 제의실 담당이자 안내실 담당인 동시에 기도와 현존으로 계속해서 봉사했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헌신과 성체조배에 대한 투신도 그 관대한 봉사의 일부였다.
메리 로즈 안토니 수녀의 건강은 지난 몇 년간, 특히 2012년 절친한 친구였던 메리 클라라 롤링수녀의 죽음 이후로 쇠퇴해왔다. 그러나 수녀는 2016년 서원 65주년 경축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다시 한번 캘리포니아 수련소에서 양성받은 사람으로서65주년을 경축하는 “첫 수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