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 수녀회…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육화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마리아 에스터 수녀

마리아 에스터 MARIA ESTER 수녀                    ND 6814                      PDF Download

에스터 테 에를린 니오 Ester The Erlin NIO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출 생: 1949년 4월 21일      인도네시아 세마랑
서 원: 1977년 2월 5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사 망: 2025년 12월 13일    인도네시아 세마랑
장 례: 2025년 12월 14일    인도네시아 페칼롱간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길 길을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2 티모 4,7)

에스터는 1949년 4월 21일에 태어나 에스터 테 에를린 니오 라고 불렸다. 팅 히엔과 리엠 마리 니오 부부의 세 자녀 중 막내였다. 에스터는 개신교 가정에서 나고 자랐으며, 중부 자바 세마랑에서 부모님과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에스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다. 개신교 가정 출신이었지만, 매일 아침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기도했고, 1972년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수련생이 되어 부디 라하유 종합병원에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부디 라하유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중, 에스터는 노틀담 수녀들의 감동적인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좋으심을 목격했다.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하고자 하는 소망은 날마다 더욱 강해졌다.

에스터는 양성 과정을 거치며 깊은 헌신과 성찰로 자신의 성소를 계속해서 키워 나갔다. 모든 일에서 노틀담 수녀로서 신실하게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1975년 1월 30일에 착복하면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인 마리아 에스터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다. 1977년 2월 5일에는 첫 서원을 발했다.

에스터 수녀는 개인 노트에 2010년 9월 17일, 루카 복음 8장 1-3절에 대한 묵상이 하느님의 섭리적 돌보심의 표징임을 깨닫고 영감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이 묵상을 통해 수녀는 가족과 소유물을 뒤로하고 노틀담 수녀가 되라는 부르심을 새롭게 깨달았다. 이는 한 공동체에서 다른 공동체로 이동하며 지칠 줄 모르고 하느님의 사랑과 좋으심을 선포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수녀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신다는 완전한 신실함과 확신으로 이 부르심을 실천했다.

에스터 수녀는 일상 속에서 신실하고, 기도에 깊이 잠기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겸손하며, 유머 감각이 있고, 규율이 바르며, 근면하고, 책임감 있는 인물로 동료 수녀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수녀 삶의 기초가 되었으며, 사도직을 통해 신실한 자세를 가지고 순명하도록 수녀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준 본보기가 되었다. 수녀는 평생 페칼롱간의 부디 라하유 종합병원, 렘방의 판티 바히아 건강관리센터, 타왕망구의 성 라파엘 공동체, 수코레조의 성녀 쥴리 건강 관리 센터, 쿠팡의 성 미카엘 대주교 신학교, 프루발링가의 성 아우구스티노 공동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봉사했다. 은퇴 후에는 주로 페칼롱간의 산타 분다 마리아 공동체에서 기도 수녀로 지냈다.

2025년 11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부디 라하유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세마랑의 성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025년 12월 13일, 수녀는 사랑의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마리아 에스터 수녀가 자비로우신 우리 아버지의 사랑의 안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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