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틀담 수녀회…좋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육화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메리 스테파나 수녀

메리 스테파나 수녀                 ND 6022                        PDF Download

스테파나 오스레드카 Stefania OSREDKAR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44년 12월 16일       유고슬라비아 슬로베니아
서 원:           1967년 8월 16일         오하이오, 샤든
사 망:           2025년 12월 7일         오하이오, 샤든 건강 관리 센터
매 장:           2025년 12월 15일       샤든, 부활 묘지

수고하는 모든 이들은 나에게로 오너라. 네가 편히 쉬게 하리라.”

스테파니아는 안톤과 마리안(보가타이) 오스레드카에게서 태어난 여덟 자녀 중 네째였다. 삶의 첫 8년을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조부모님의 농장에서 보냈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평생의 사랑은 농장의 가축들을 돌보고 밭에서 일을 도우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공식적 허가를 기다리며 슬로베니아의 집을 떠나 오스트리아에서 야영을 하며 지냈다. 스테파니아는 2학년이 되었을 때 여행 비자를 얻어 오스트리아에 있는 가족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미국에 왔고 1956년 5월 26일에 클리블랜드에 도착했다. 스테파니아는 교사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학교 과정을 밟아 나가면서 영어 습득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교직원이 노틀담 수녀들이었던 클리블랜드의 세인트 피터 고등학교에서 스테파니아는 영어와 종교 수업을 즐겼다. 6학교때부터 수도 생활을 고려해 왔기에 강력하면서도 단순했던 가족의 신앙과 고등학교 피정이 수녀원 입회에 대한 결정을 확고히 해 주었다. 스테파니아는 1964년 8월 22일에 청원자가 되었으며 착복하면서 메리 스테파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메리 스테파나 수녀는 다른 이들을 돌보는 일에 삶을 바쳤다. 부모님이 일을 했을 때 동생들을 돌봐주었던 수녀는 요리, 가사일, 육아의 책임에 상당히 해박했다. 수녀는 30년 이상을 본원과 오하이오, 버지니아 미들버그의 큰 노틀담 수녀원에서 음식 봉사일을 수행했다. 수녀는 요리를 즐겼고 많은 소임을 해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보통은 조용했고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환대의 미소와 수녀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거저 받는 선물이었다.

2000년에 오하이오 앰허스트에 있는 세인트 조셉 본당에 파견되면서 메리 스테파나 수녀에게 새 사도직의 기회가 열렸다. 수녀는 15년간을 연장 돌봄 프로그램에 있는 학교 아동들과 소통하고 감독하며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를 보냈다. 수녀는 사목적 보살핌 담당 그룹에도 속해 있었다. 본당의 병자들과 노인들을 방문하는 일은 수녀의 단순한 선함과 사랑의 현존을 알게 된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시간이었다. 수녀는 지혜롭고 연민에 찬 경청자였다.

메리 스테파나 수녀는 2019년에 샤든 본원으로 돌아왔다. 공동체 수녀들에게 봉사했으며 SND기도 라인 사도직에 참여했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귀중히 여겼다. 가족들에 대한 수녀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각 가족 구성원이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겪을 때 그들을 지지해 주었다. 지난 3년동안 건강이 쇠퇴하면서도 수녀는 평화로웠다. 수녀는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고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마음의 가장 깊은 소망을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었던 메리 스테파나 수녀의 삶이라는 선물에 감사한다. 좋으시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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