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비니타 수녀

메리 비니타 Mary Vinita 수녀            ND 5580        PDF Download

알레이쿠티 토마스 아랑가투쿠지일

Aleykutty Thomas Arangathukuzhiyil

파트나, 성모 승천 관구

출 생        1935년 2월 7일         케랄라 에투마누르
서 원        1962년 1월 6일         비하르 자말푸르
사 망        2020년 2월 17일       파트나 관구 본원
장 례        2020년 2월 20일       파트나 관구 본원
매 장        2020년 2월 20일       파트나 관구 묘지

알레이쿠티는 토마스 아랑가투쿠지일과 마리암 데바지아의 여섯 자녀 중 맏이였다. 1935년 2월 11일에 성 마리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7세가 되던 해의12월 8일에 첫 영성체를 받았다.

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닌 다음에는 성체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성 마리아 고등학교에 다녔다. 수녀들로부터 받은 주의와 보살핌, 본당 사제가 해 주던 매일의 교리 수업은 알레이쿠티의 삶과 수도자가 되고자하는 결심에 엄청난 교육적 영향을 끼쳤다. 1958년, 알레이쿠티는 성소 증진을 위해 케랄라로 간 노틀담 수녀들을 만나 아스피랑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당시 케랄라에서 자말푸르까지의 여행은 나흘이 걸렸기에 7월 13일에 자말푸르에 도착했다. 수녀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이곳에서 나는 노틀담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연습 중이다. 너무 너무 행복하다.” 그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게 바로 수도 생활 내내 메리 비니타 수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 행복한 사람, 책임자 수녀와 동료 수녀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협력자들에게도 매우 감사해 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작은 깜짝 선물들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

메리 비니타 수녀와 세 명의 그룹 수녀들은 1962년 1월 6일에 첫 서원을 발했다. 당시 관행대로 유기서원기를 마치면서 종신선서 준비기를 위해 로마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1967년 12월 8일에 모원에서 종신선서를 발했다.

베리 비니타 수녀는 뭉거에 있는 국립 교사 양성 학교에 입학하여 1970년에 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 이후에는 란치에 있는 니르말라 대학에 다녔고 무사히 학사 과정을 마쳤다.

수녀는 31년간 직접적으로 교육 사도직에 종사했다. 자말푸르의 성 요셉 학교, 사사람의 성 안나 학교, 파트나의 하트만 초등학교, 셰이크푸라의 마리아 아슈람, 체나리, 솜나할리는 수녀가 사도직을 행한 곳이다. 3년간은 방갈로르 소피아에서 주방을 담당했다. 메리 비니타 수녀는 공동체의 사목 담당이었고 본당의 사목 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메리 비니타 수녀 자신의 말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을 스승이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행했다.”

2016년에는 관구 본원 살루스로 이전했다. 메리 비니타 수녀는 거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입원 한 번 하지 않고 보행기로 이동하며 공동체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2020년 1월 20일, 수녀는 일련의 복통으로 인해 쿠리의 성가정 병원에 입원했다가 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받았고 만족스러운 회복세를 보였다. 2월 7일에 퇴원하여 계속적인 휴식과 회복을 위해 본원 살루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수녀를 천상 고향으로 데려가는 것임을 우리가 알 리 없었다. 수녀는 2020년 2월 17일 오후 3시 10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의 분원 수녀들은 우리 사랑하는 메리 비니타 수녀를 조문하고 수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파트나로 왔다. 2월 20일의 부활 미사는 수녀들과 몇 몇 친지들이 자리한 가운데 파트나 보좌 주교인 세바스찬 칼루푸라 주교와 다른 많은 사제들이 집전했으며 수녀는 같은 날 저녁 파트나 본원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