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버나드 클레어 수녀

메리 버나드 클레어 Mary Bernard Clare 수녀        ND 4145            PDF Download

마가렛 메리 버드 Margaret Mary BUDDE

미국,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관구

출 생:          1927년 4월 12일          켄터키 Ft. 토마스
서 원:          1949년 8월 10일          켄터키 커빙턴
사 망:          2020년 8월 20일          켄터키 커빙턴
매 장:          2020년 8월 26일          켄터키 커빙턴

마가렛 메리 버드는 켄터키의 Ft. 토마스에서 클라라와 버나드 버드의 일곱 자녀 중 네째로 태어났다. 페기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이 많고 명랑했다고 묘사했다. 가축 농장에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놀고 일하는 일상을 즐겼다.

페기는 노틀담 아카데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수녀원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어린 사촌, 로렌스 버드 수녀가 입회했다. 그래서 페기는 울며 이렇게 말했다. “그 애는 입회하는데 난 안되네요.” 그러자 어머니는 마음을 접고 페기는 20세이던 1946년에 노틀담 수녀원에 입회했다.

버나드 클레어 수녀는 오하이오 취비오의 성 마틴 학교에서 초등부를 가르친 60년 경력을 시작했다. 수녀는 타고난 교사였고 켄터키의 커빙턴 교구와 렉싱턴 교구, 알라바마의 버밍험의 여러 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봉사했다. 가장 보람있던 사도직은 천주의 모친 학교와 성심 학교의 시각 장애 학생들을 가르쳤던 10년이었다. 수녀는 이 아이들이, 자신이 함께 일했던 이들 중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수녀의 가족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심보다는 못했지만 거의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가족들은 하이츠에 있던 수녀를 몹시 즐겨 방문하곤 했다. 수녀는 언제나 최고의 가족 모임을 주관했다. 포스터를 제작하고, 누가 누구에게 속하는지 알 수 있고 서로가 더 잘 알 수 있도록 색을 입힌 판지를 잘라 이름표를 만들어 어느 친지가 어떤 형제자매에 속하는지를 명확히 했다.

수녀는 2008년에 은퇴했다. 그리고 몇 년간 루르드 홀의 수녀들을 위한 주간 활동 조율을 도왔다. 그곳에서는 수녀가 계획한 것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공동체 내의 동료 수녀들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수녀가 소통을 할 수 없었던 삶의 마지막 시기에도 수녀의 마음과 미소 안에 우리 주님이자 구세주를 모시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버나드 클레어 수녀는 참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으며 그 사랑을 가족과 수녀들과 간호사들, 친구들 등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전했다..

버나드 클레어 수녀는 자신의 영명축일에 평화로이 하느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떠났다. 수녀가 하느님을 섬기던 그 사랑이 그분과 영원히 함께 하는 끝없는 행복을 가져다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