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체니라 마리아 수녀    

알체니라 마리아 Alzenira Maria 수녀                       ND 5152           PDF Download
알체니라 마리아 프레베델로 바티스텔라
Alzenira Maria PREVEDELO BATISTELA

브라질, 카노아스 아파레시다 성모 관구

출 생:      1934년 8월 7일         쥴리오 데 카스틸료스, 피날 그렌데
서 원:      1957년 2월 12일        파소 푼도
사 망:      2018년 2월 12일        카노아스 레칸토 아파레시다
매 장:      2018년 2월 13일        카노아스 수녀원 묘지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 루카 12, 34

알체니라 마리아는 카를로스 바티스텔라와 프란치스카 데 아씨스 프레베델로 바티스텔라의 여덟 자녀 중 세 째였다. 알체니라는 평생 지속되었던 복음적 가치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심어 준 신실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자랐다.

알체니라 마리아 수녀는 어릴 때부터 노틀담 수녀가 되고 싶었다고 성소 이야기에 적고 있다. 가톨릭 잡지인 레비스타 레이냐에서 자녀들이 수도자가 된 가족들의 사진을 들여다 보곤 했다. 부모에게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수녀가 되고 싶어요.” 이 소망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커져만 갔다. 부모는 결국 아스피랑 – 수도 양성의 첫 단계였던 – 이 되고자 하는 그 갈망을 받아들였다. 알체니라는 수련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동경하던 수도 서원의 날이 왔구나!” 그 날은 1957년 2월 12일이었다. 61년 후 바로 이 날 수녀는 노틀담 수녀로서 지상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알체니라 수녀는 쿠르소 노르말 레죠날을 졸업한 다음 교육에 헌신했다. 나중에는 회계를 공부하여 경리 직무에 대한 자격을 갖추었다. 전 생애에 걸쳐 수녀는 분원 책임자, 교사, 경리로서 관구와 수녀회에 전적으로 투신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관구 경리로서, 1989 년부터 1996년 2월까지는 관구장으로서 일했다.

알체니라 마리아 수녀는 관구장 직위를 받아들이는 일이 몹시 어려웠다. 수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움과 불확실함, 내적 갈등과 철야 기도, 그리고 내 한계에 대한 숙고를 거친 다음….하느님의 섭리 앞에 고개를 숙였다… 사랑으로 관구에 봉사하도록, 그리고 그를 통해 교회에 봉사하도록 스스로를 내어놓으며 예라고 응답했다.” 관구장으로서 수녀의 글에 스며있던 주제는 이랬다. “좋으신 하느님을 알리고 사랑 받으시게 하기”

알체니라 마리아 수녀는 타고난 행정가였다. 지극히 유능했으며 넓은 비전의 소유자였다. 행정가로서, 또 관구장으로서의 사도직에서 수녀는 언제나 긍정적인 면을 보려 했고 사람들의 선의를 굳게 믿었다. 수녀는 또한 신앙의 여인이었으며 변화를 가져오는 기도의 힘을 신뢰했다. 깊은 성모 신심을 키웠고, 친절하고 단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새 천 년기가 시작되자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보였다. 그 결과로 알체니라 마리아 수녀의 활력이 심하게 저하되었다. 2009년, 그러한 상태를 위한 도움을 받고자 레칸토 아파레시다 공동체로 들어왔다. 수녀는 조금씩 움직이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갔는데 이는 수녀에게 엄청난 괴로움이었다.

알체니라 마리아 수녀는 기쁘게 사도직을 수행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수녀들을 섬기며 하느님과 수녀회에 무조건적으로 충실한 능력이라는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수녀가 많고도 굳건한 성소를 위해 전구해 주기를 빈다. 하느님께서 수녀를 보상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내려주시기를.